산업 바이오

회화·설치·조각…한폭의 산수화 거니는 듯

◆ 리움미술관 강서경 개인전

평면·영상·퍼포먼스 등 아울러

신작 '산' '바닥' 등 130점 전시

2년 투병후 함께하는 미술 고민

"한데 모여서 다름을 나누는 공간"


9월의 미술계는 여전히 화려하고 뜨겁다. 프리즈(Frieze)와 키아프(Kiaf)라는 역대급 미술 축제가 열린 덕분에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는 ‘최고의 카드’들을 꺼내 들었고, 아트 페어가 끝난 후 서울 곳곳에서 ‘블록버스터급 전시’가 계속되고 있다.

상반기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로 서울 한남동에 10만 여 명의 인파를 끌어 모은 리움미술관은 이런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조용한 길을 택했다. 지난 7일부터 설치미술가 강서경(46)의 ‘버들 북 꾀꼬리’ 개인전을 열기로 한 것. 강서경은 평면,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현대미술 작가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미술관을 즐겨 다니는 이들이 오랜 시간 그리워한 이름 임에는 틀림없다.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전통을 동시대 예술 언어로 재해석해 서양미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는 보기 드문 여류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 ‘자리’ 연작은 조선시대 1인 궁중무인 ‘춘앵무(春鶯舞)’에서 춤을 추는 공간의 경계를 규정하는 화문석(강화도의 대표 특산품 돗자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음절 한 마디보다 짧은 단위를 가리키는 언어학 용어 ‘모라(Mora)’, 조선시대 유랑 악보인 ‘정간보(井間譜)'를 활용한 ‘정’ 등의 작품 역시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작가의 관심사를 잘 보여준다. 그러던 그가 2년 여의 암투병 시기를 겪고 ‘함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총 130여 점이 공개되는 이번 전시에는 ‘산’, ‘바닥’ 등 수많은 대규모 신작이 공개됐다.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강서경의 개인전 ‘버들 북 꾀꼬리’ 전경. 사진제공=리움 미술관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강서경의 개인전 ‘버들 북 꾀꼬리’ 전경. 사진제공=리움 미술관




작가는 회화를 ‘눈에 보이는 사각형과 보이지 않는 사각 공간을 인지하고 그 안에 무엇을 채워 넣을지 고민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이런 독특한 회화 철학이 담긴 작업 과정을 ‘모라’라고 정의했다. 전통 한국화의 방식대로 장지나 비단을 수평으로 펼친 채 그림을 그리고 반투명한 물감층의 흔적을 쌓아올리며 이렇게 제작된 모라를 또 다시 탑처럼 쌓아 3차원의 조각처럼 전시하거나 다양한 변형태로 제시한다.

강서경의 ‘모라’. 사진=서지혜 기자강서경의 ‘모라’. 사진=서지혜 기자


강서경의 ‘귀’. 사진=서지혜 기자강서경의 ‘귀’. 사진=서지혜 기자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강서경의 개인전 ‘버들 북 꾀꼬리’ 전경. 사진=서지혜 기자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강서경의 개인전 ‘버들 북 꾀꼬리’ 전경. 사진=서지혜 기자






작가는 그 동안 수많은 ‘개인’을 이야기한 작품을 한 폭의 풍경화가 3차원으로 펼쳐진 것처럼 늘어놓는다. 그간 잘 알려진 작가의 세련된 작품이 작가와 미술관의 탁월한 기획력 덕분에 아름다움을 더했다. 사계를 담은 산, 바닥과 벽으로 펼쳐지는 낮과 밤, 작품들의 보이지 않는 틀이 되는 다양한 사각이 전시장에 무심하게 던져져 있는데, 이들은 서로 잘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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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은 작품과 작품 사이를 산책하며 마치 미술관이 꾸며 놓은 조용한 숲을 오가는 느낌을 받는다. 상반기 카텔란의 재기 발랄한 장난감 같은 작품이 놓여있던 전시관과 같은 건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차분하고 평온해졌다. 작가는 이 전시 공간을 ‘수만 마리의 꾀꼬리가 풀려 있는 모습’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함께 모여 다름을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전시”라며 “미술을 하는 작가로서 다양한 매체와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고민해 왔던 그런 여정을 북을 치며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으로 보여 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강서경 작가강서경 작가




강서경의 ‘좁은 초원’강서경의 ‘좁은 초원’


‘개인의 자리’를 이야기하던 작가가 ‘함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게 된 데는 아마도 지난 2년 간의 암 투병 고충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회 속 개인에게 허락된 자리, 자신과 함께 사는 다른 이들의 존재, 그들의 움직임이 인지되고 관계 맺는 풍경을 고민해 온 작가의 시간이 전시장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는 “결국 미술은 함께 하는 것임을 깨달았고. 함께하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무엇일까를 더욱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관람료 1만2000원.


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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