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눈을 떠서 대명천지 어서 다시 보옵소서. 아이고 아버지, 아이고 아버지!”
공양미 삼백 석을 받고 인당수에 빠지기로 한 심청이가 아버지 심봉사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린다. 심청이의 애끊는 마음에도 선원들은 물때가 늦었다며 심청이를 재촉한다. 심청이의 걸음걸음마다 “끌리는 초미자락을 거듬거듬 걷어 안고 피같이 흐르는 눈물 옷깃에 모두 사무친다”며 합창이 뒤따른다. 심청가의 절절한 슬픔이 소리꾼들의 합창을 만나 배가 된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이 추석을 맞아 창극 ‘심청가’로 돌아온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연습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올해 ‘베니스의 상인들’, ‘트로이의 여인들’ 등 외국 작품만 올리고 있어 추석 연휴에 한국 전통 작품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창극 심청가는 2018년 초연, 2019년 재연된 작품으로 무대에 오르기로는 4년 만이다. 손진책이 극본과 연출을, 안숙선 명창이 작창을 맡았다. 판소리의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하되 5시간이 넘는 전체 내용 2시간여로 압축했다.
이번 심청가는 주요 대목을 빠짐없이 배치하면서 일부 대목을 합창으로 변형하는 등 새롭게 소리를 구성한 게 특징이다. 심청과 심봉사의 애절한 독창부터 35명 출연진이 완성하는 풍성한 소리까지 다양한 소리를 만날 수 있다. 그중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기 직전에 부르는 ‘범피중류’ 장면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힌다. 손 연출은 “‘심청가’는 판소리 자체가 창극이 되는 구조”라며 “판소리의 힘은 엄청나다. 그 힘을 가장 증폭시키는 수단으로 합창을 많이 넣었다”고 설명했다.
판소리 본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리 외의 모든 요소는 최소화했다. 무대는 목재 평상과 의자, 담장 몇 개로만 이뤄져 장면이 바뀔 때마다 징검다리, 뱃머리 등으로 바뀐다. 소품도 부채가 심봉사의 지팡이부터 뱃사공의 노 등으로 활용된다.
이번 공연에서 ‘어린 심청’ 역은 민은경, ‘황후 심청’ 역은 이소연, ‘심봉사’ 역은 유태평양이 맡았다. 극의 해설자 격인 ‘도창’에는 김금미가 새롭게 맡았다. 그는 앞선 공연에서 도창을 맡은 안숙선, 유수정 명창의 이름에 누가 될까 부담을 느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유태평양은 “지난 공연에서는 단순하게 눈이 안 보이니까 눈을 감고 하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완벽하게 눈을 다 뜬 상태로 연기한다”며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눈이 멀었다는 걸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집중하게 되고 연기도 자연스러워진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이달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다. 추석 기간인 28일부터 30일까지는 ‘추임새 클래스’도 열린다. 공연 관람 전 국립창극단원에게 판소리 ‘심청가’ 한 대목과 감탄사인 추임새를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