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여년 간 유지해온 자동차세 개편에 본격 손을 댄다. 배기량 크기에서 차량 가액 등을 기준으로 바꾸는 방향이다. 정부는 증세가 되지 않도록 세수중립성을 유지한다고는 하나 전기차 세부담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 데다, 세제 개편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협상도 필요해 난관이 예상된다.
행정안전부는 한국지방세연구원과 함께 ‘자동차세 개편 추진단’을 구성해 승용차자동차세 과세 기준을 변경하는 개편 작업에 착수한다고 21일 밝혔다. 자동차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 친환경정책과의 일관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준수 여부 등을 검토한 뒤 내년 상반기 세부 개편안(기준별 과세 구간, 세율, 적용대상, 시행시기 등)을 마련하고, 내년 하반기에 지방세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매년 납부하는 자동차세는 보유한 차량 수마다 배기량에 따라 부과하며 1990년에 도입됐다. 비영업 승용차의 경우 배기량 1cc당 1000cc 이하는 80원, 1600cc 이하는 140원, 1600cc를 초과하면 200원을 부과한다. 영업 승용차는 1cc당 1600cc이하는18원, 2500cc 이하는19원, 2500cc를 초과하면 24원을 매기고 있다. 단, 전기자동차는 ‘그 밖의 승용차’로 분류돼 13만원에 불과하다.
행안부 관계자는 “전체 세수는 증가 되지 않도록 유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증세 논란이 없도록 세수 규모 자체는 지금과 유사한 수준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자동차세 세수는 연간 4조7000억원이며 이 중 비영업 승용차가 4조6000억원으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자동차 배기량 크기는 줄이되 출력은 그대로 유지하는 자동차 엔진 다운사이징 기술의 발달로 기존 고배기량의 고가 차량이 저배기량으로 바뀜에 따라 자동차세 과세 기준 변경 필요성은 수 차례 제기돼왔다. 정부는 지난 2010년 관련 용역을 맡기고 공청회도 열었지만 다시 덮었고, 2015년 심재철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배기량 기준에서 자동차 가격으로 기준을 바꾸는 법안을 발의한 것도 무산됐다.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이다. 한미FTA에는 ‘대한민국이 차종별 세율 차이를 확대하기 위해 배기량 기준에 기초한 새로운 조세를 채택하거나 기존의 조세를 수정할 수 없다’는 독소조항이 있다. 결국 우리 자동차세를 바꾸는 데도 한미FTA 개정을 하는 식으로 미국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더욱이 전기차 세금은 높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테슬라의 압박 속에 미국 정부가 받아들일 지가 관건이다.
행안부는 “전기차의 경우 친환경차 보급 정책을 충분히 고려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즉, 전기차는 적용 시기를 유예하는 방안이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가격 외에 차 무게나 탄소배출량 등 기준을 복수로 두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 행안부는 개편안 마련 후 국내외 이해관계자와 산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편 대통령실은 국민참여토론을 거쳐 지난 13일 배기량 기준을 차량가액 등으로 대체하라고 권고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자동차세 과세 기준 개편 필요성에 많은 국민께서 공감하고 있는 만큼 관련 전문가 의견수렴을 통해 공평 과세 기준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개편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