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판매 둔화로 고민이 커진 국내 배터리 업계가 중국의 배터리 덤핑 공세와도 맞서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위기의 진앙지는 다르지만 경쟁 상대는 시장의 패권을 놓고 격전을 벌이고 있는 중국 배터리 회사들로 같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전기차 판매 성장이 둔화하면서 배터리 업계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부진한 전기차 수요에 대한 대응 방안의 하나로 값싼 전기차 라인업을 늘리면서 중국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몸값이 올라가고 있어서다.
국내 배터리 3사가 주도하는 리튬·니켈·코발트(NCM) 기반의 삼원계 배터리는 주행 성능은 뛰어나지만 가격이 비싸다. 배터리는 전기차 가격의 40% 정도를 차지한다. 대중적인 모델을 출시해야 하는 완성차들로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산 LPF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다.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발판 삼아 급성장한 중국의 배터리 업체들이 과잉 공급 국면에 접어든 점도 우리 업체들에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저가 배터리를 수출하는 중국 업체들과의 가격 경쟁이 불가피해서다. 시장조사 업체 CRU그룹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배터리 생산능력은 1500GWh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2200만 대에 공급할 수 있는 규모로 올해 중국산 배터리 수요(636GWh)의 2배를 넘는다. 이런 추세라면 2027년에는 배터리 생산량이 수요의 4배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문제는 이런 과잉 생산이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산 배터리의 덤핑 공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중국 기업들은 내수 시장에서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경쟁력을 키운 뒤 과잉 생산된 물량을 저가에 밀어내기 식으로 수출한 전력이 있다. 2007~2011년 태양광 셀·모듈을, 2015년에는 철강을 저가로 수출하면서 글로벌 산업 생태계를 교란했다. 배터리 산업에서도 중국산 덤핑 공세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태양광 모듈과 철강 모두 미국의 무역 제제를 받기는 했지만 규제가 확정되기까지 국내 경쟁 업체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며 “글로벌 배터리 패권을 쥐고 중국 회사와 경쟁하는 K배터리사들의 고민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