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규모에 비해 가계·기업부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국제기구의 경고음이 4년 내내 울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와 달리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부채가 다시 늘어나면서 위기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21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우리나라 신용갭(credit-to-GDP gaps)은 12.7%를 기록했다. 신용갭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신용 비율이 장기 추세에서 얼마나 벌어졌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2% 미만이면 ‘정상’, 2~10%면 ‘주의’, 10% 이상이면 ‘경보’ 수준이다. 특히 BIS는 높은 신용갭이 지속되면 금융위기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신용갭은 2020년 2분기 12.9%로 약 10년 만에 처음 10%대로 진입했다. 코로나19 이후 초저금리 등으로 주택 매수가 늘면서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며 2021년 3분기 17.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금리 인상 등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했으나 올해 1분기마저 신용갭이 10%를 넘으면서 12분기 연속으로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과거 신용갭이 일시적으로 10%를 넘은 적이 있었으나 이토록 오래 지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디레버리징에 어려움을 겪는 동안 대부분의 국가는 신용갭을 축소했다는 것이다. BIS 조사 대상 43개국 가운데 우리나라 신용갭 순위는 2020년 말 10위에서 올해 1분기 말 2위로 급상승했다. 일본을 제외하고 우리나라보다 신용갭이 높았던 캐나다·프랑스·홍콩·말레이시아·노르웨이·싱가포르·스위스·태국 등은 모두 낮아졌다. 오히려 우리는 올해 2분기 들어 가계·기업부채 증가세가 가팔라진 만큼 신용갭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