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尹, 김정은 체제 뒤흔들 '강력한 무기' 다시 꺼낼까

■김정은 떠는 '대북확성기' 재가동 임박

북한군·접경지역 주민 동요 이끌어내

北도발 때마다 '심리전 카드'로 활용

정부, 남북합의서 관련 법률 검토 마쳐

국방장관 교체 후 대북방송 재가동할듯

특수풍선으로 北지도층 있는 평양까지

민간 차원 대북전단 발송도 허용 전망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육군 9사단 교하중대 교하소초 장병들이 그해 5월 1일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 통제구역 내 설치돼 있는 고정형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 파주=권욱기자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육군 9사단 교하중대 교하소초 장병들이 그해 5월 1일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 통제구역 내 설치돼 있는 고정형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 파주=권욱기자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 거래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과 러시아를 ‘러시아·북한’ 순으로 지칭하며 북러의 군사 교류를 강력히 경고했다. 통상 정부 발표 등에서 사용되는 ‘북한·러시아’ 순서를 반대로 바꿔 발언한 것이다.

외교 안보 전문가들은 핵·미사일로 노골적 대남 위협을 가하는 김정은 정권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같은 민족이라고 북한을 무조건 끌어안을 수 없다는 윤 대통령의 속내가 담긴 발언이라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 정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북 심리전 강화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맞대응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통일부도 개정 남북관계발전법 자체가 남북합의서와 연동된 점에 주목해 남북 간 상호 비방을 금지한 남북합의서의 효력을 대통령이 정지시키면 그간 금지됐던 확성기 방송과 대북 전단 살포 행위가 문제가 없다는 법률적 검토를 끝마쳤다. 이에 군도 최전방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 시설에 대한 점검에 본격 착수했다. 국군심리전단이 장비 점검 등 대비 태세 유지 임무를 수행 중이다. 국정원 역시 북한에 대한 심리전을 담당할 대북심리전국을 부활하고 문재인 정부 시절에 폐지됐던 대북 심리전 재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장관 취임 후 대북 확성기 재개할 듯


전문가들도 북한의 대남 심리전 재가동이 총력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서둘러 맞불을 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북한은 핼러윈 참사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 휘발성이 큰 이슈가 나올 때마다 자체 보유한 사이버 요원뿐 아니라 해외 공작원과 한국 내 포섭 세력, 친북 성향의 해외 동포 등을 총동원해 조직적인 여론 조작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북한의 대남 심리전 강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 “남조선은 명백한 적”이라며 투쟁 강화를 지시한 후 북한이 한국 내 여론 분열과 좌우 대립, 남남(南南)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대남 심리전의 수위를 높이는 동시에 자취를 감췄던 대남 강경파 김영철을 복귀시켜 대남 심리전 조직들이 대폭 신설·강화됐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22일 정부의 한 소식통은 “윤 대통령이 핵·미사일 도발과 북한발 가짜 뉴스 등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간첩 활동에 대응할 대북 심리전 강화를 지시했다”며 “국방부 장관이 새롭게 취임하고 국가안보실 2차장이 교체되면 최전방에서 대북 확성기 재개는 물론 민간 차원의 대북 전단 발송을 정부가 허용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 정지는 오히려 북한에 한반도 도발의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손대지 않는 게 실익이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연합뉴스


그동안 북한의 심각한 도발이 있을 때마다 확성기를 통한 대북 방송은 가장 강력한 대응 카드로 활용돼 왔다. 북한 지휘부가 가장 민감해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천안함 폭침 사건(2010년), 비무장지대(DMZ) 목함 지뢰 사건(2015년), 4차 핵실험(2016년) 등 도발에 나섰을 때 대북 방송으로 즉각 대응했다. 그러나 이후 중단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현재는 남북 관계 해빙기였던 2018년 4월 판문점선언에 따른 신뢰 조치로 대형 확성기를 모두 철거해 5년 5개월간 방송이 중단된 상태다.

안보 당국 관계자는 “북 도발에 대응할 확장 억제의 핵심인 전략자산 전개 등 미국과 협의가 필요한 대북 압박 카드를 제외하면 확성기 같은 대북 방송은 우리 정부 결심만으로 언제든 사용이 가능한 핵심 비대칭 전력”이라고 강조했다.

대북 확성기 효과는 과거 북한이 확성기 방송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던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북한 매체들은 확성기 방송을 직접 지목하며 “역적패당이 밤낮으로 불어대는 비방 중상 나발(2012년 4월)” “비무장지대를 새로운 북침 전쟁의 도폭선으로 만들어놓으려는 괴뢰들의 흉심(2016년 7월)”이라는 등 맹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2015년 8월에는 DMZ 목함 지뢰 도발에 맞서 우리 군이 11년 만에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을 때 북한이 경기 연천군 28사단 최전방에 배치된 확성기를 조준해 고사총 1발과 직사화기 3발을 발사하며 무력 시위까지 벌였다.



30km밖 北주민 마음 흔들어 ‘정권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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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북측은 목함 지뢰 도발에 대한 유감 표명 카드를 꺼내면서 대신 남한의 확성기 방송 중단을 강력 요구했다. 당시 회담에 참석한 관계자는 “북한 지휘부의 관심사는 오로지 확성기를 통한 대북 방송 중단 같아 보였다”고 말했다.

고정식·이동식 확성기에는 고출력 스피커가 있다. 이 스피커를 통해 20㎞ 안팎 전방으로 북한 실상을 다룬 뉴스와 기상 정보, 가요 등을 방송하면 북한군 부대는 물론이고 접경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소리가 전달된다. 저녁 시간에는 청취 거리가 최대 30㎞까지 성능을 발휘한다. 이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내부 동요를 유발할 수 있어 확성기의 효과는 생각 이상이다. 게다가 북한 주민들은 물론이고 북한군 내부에서도 확성기 방송 내용에 대한 신뢰도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최전방 북한군 부대와 접경 지역 주민들이 방송 내용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정권 입장에서는 ‘위력적인 심리전 도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군과 주민의 동요를 끌어내는 효과가 있기에 북한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남북 대화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반면 북한은 대북 확성기에 맞대응해 대남 확성기 방송 시설을 설치했으나 출력이 낮고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대북 확성기는 대북 심리전에서 북한을 위협할 치명적인 무기다. 2017년 6월 중부전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온 북한군 귀순자도 대북 확성기 방송이 귀순 결심에 영향을 줬다고 진술한 것이 이에 대한 방증이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확성기를 통한 대북 방송을 재개한다면 지금 북한의 현실을 감안할 때 과거보다 효과가 더 클 것”이라며 “요즘 군에 입대하는 장병들은 고향에서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몰래 시청해 온 세대라 남한 언어에 친숙하다”고 했다.

2018년 철거 직전까지 최전방경계부대(GOP) 일대 전방 지역 10여 곳에 고정식·이동식 확성기 40여 대를 설치했다. 이들은 모두 해체 상태로 보관돼 군이 주기적으로 관리해 왔다. 군 관계자는 “2018년 당시 동·서부전선에 배치됐던 확성기 철거 작업은 사흘 만에 완료됐다”며 “지시만 떨어지면 재배치하는 작업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북한을 떨게 할 또 다른 카드는 민간의 대북 전단 발송 허용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 지도부는 탈북자를 중심으로 한 민간 차원의 대북 전단(삐라) 발송에 강하게 반발해 왔다. 2008년 10월 남북 군사 실무 회담 때 북측 대표단은 민간단체의 전단 수백 장을 모은 박스를 회담장에 가져와 내던지는 모습을 연출하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북한 군부 또한 그해 같은 달 16일에 이 문제를 거론하며 개성공단 통행 제한 및 차단은 물론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위협까지 했다.

특수풍선 北지도층 모인 평양까지 날아가


북한이 남측에서 날아오는 삐라에 이처럼 민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손광주 데일리NK의 편집장은 “북한은 선전선동의 나라이기 때문에 삐라로 외부 정보의 유통 차단에 실패하면 체제 붕괴를 가져올 수 있을 정도로 위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적으로 탈북자들에 따르면 2009년 노동당 창건 기념일인 9·9절에 남측 민간단체들이 보낸 전단이 평양의 심장인 김일성광장에 떨어져 한바탕 난리가 났다고 한다. 전단의 제목은 ‘김정일을 고발(신고)합니다’였다. 선전선동과 함께 외부 정보의 통제를 기반으로 체제를 유지하는 북한의 심장부가 뚫리면서 북한 지휘부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북한의 체제 유지 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에 보내는 고발장 형식의 이 전단은 그의 죄목을 △특수 절도죄 △특수 강간 및 미성년 폭행죄 △경력 기만 및 특수 사기 △납치 및 특수 살인죄 △특수 정치범 등 다섯 가지로 명시했다.

북한 군부가 속을 끓이며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남한에서 발송되는 전단들은 김 위원장의 호화 생활 등 부패 실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 존엄에게 찍히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과격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일부 북한 당국자들은 ‘삐라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균이 묻었다’는 등의 악성 선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를 믿는 주민은 거의 없다는 후문이다.

군 소식통은 “북한은 과거부터 대북 심리전이 펼쳐지면 자신의 ‘아킬레스건’이 드러날 것으로 보고 날아오는 대북 전단을 향해 고사포를 쏘며 민감하게 대응했다”며 “남한 임진각이나 서해상에서 날린 전단 풍선이 북한 지도층이 모여 사는 평양 시내까지 가는 것에 대해 지도부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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