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2차전지 등 한국의 핵심 기술이 산업스파이 등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의 ‘2003~2023년 산업기술 해외 유출 적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적발된 기술 유출 건수는 총 552건에 달했다. 이로 인한 피해액도 10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됐다. 5년 단위로 보면 산업기술 해외 유출 대비 국가핵심기술 비중은 2003~2007년 2.52%(3건)에서 2008~2012년 8.95%(17건), 2013~2017년 14.39%(20건), 2018~2022년 35.49%(33건)로 급증하는 추세를 보였다. 분야별로는 전기전자가 163건으로 가장 많았고 기계(81건), 정보통신(77건), 디스플레이(47건), 반도체(35건) 등 거의 전 분야에서 기술 유출이 발생했다.
우리 기술을 가장 많이 유출한 나라는 중국으로 전체 유출 건수의 70%가 넘었다. 기술 유출 주요 타깃이 자동차·조선 등 기간산업에 집중됐던 초반과 달리 최근엔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 등 첨단산업으로 바뀌었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K칩스법’까지 만들어 산업 보호에 힘썼음에도 불구하고 기술 유출이 5년 전보다 4배가량 늘었다. 미국의 대(對)중국 첨단 반도체 기술·장비 수출 금지 조치 이후 한국 반도체 기술에 눈독을 들이는 중국의 기술 탈취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한 번 뺏긴 기술은 ‘엎질러진 물’처럼 피해 복구가 어렵다는 점에서 첨단 기술 유출은 국가 전략 산업의 경쟁력 상실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산업스파이에 대한 처벌은 최근 5년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 중 1심에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 6.2%에 불과할 정도로 솜방망이에 그쳤다. 관련 재판도 부지하세월이다. 올해 6월 기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피고인 79명 중 35명(44.3%)은 기소 후 2년이나 경과했다. 솜방망이 처벌과 재판 지연이 기술 탈취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어렵게 확보한 초격차 기술을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하도록 신속하고 엄중한 처벌 장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