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고물가 시대의 서민 가계 부담을 키우는 주범 중 하나로 통신비를 꼽으면서 통신사 요금제의 전면 개편을 주문하고 나선 것이다. 통신업계는 정부 방침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큰 모습이다. 계속된 요금 인하 압박에 설비 투자 여력이 점차 줄어들고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게 업계의 반발이다. 특히 민간 기업의 서비스 가격에 대해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맞지 않다는 볼멘소리 또한 상당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달 15일 SK텔레콤(017670)·KT(030200)·LG유플러스(032640) 등 통신 3사의 대표들과 첫 상견례 자리에서 통신비 인하를 요구했다. 이 위원장은 “통신산업은 오랜 기간 과점 체제로 운영되면서 이권 카르텔이라는 지적이 있다”면서 “통신서비스 요금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국민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달라”고 했다. 간담회가 끝난 뒤 통신사의 인프라 투자 여력도 확보해야 한다는 설명을 방통위가 덧붙였지만 이날 발언의 무게 중심은 통신비 이슈에 쏠려있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현 정부는 가계 통신비를 줄여야 한다는 기조가 뚜렷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통신사들을 향해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과점 형태를 유지하는 정부의 특허사업”이라며 “업계가 물가안정을 위한 고통분담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도 관련 문제를 적지 않게 언급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실 정부의 통신비 인하 요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역대 정권의 단골 소재에 가깝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실제 이명박 정부는 ‘통신비 20% 이상 경감’ 공약을 내세운 바 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는 ‘단통법’이라 불리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보편요금제’ 등 저가 요금제 출시 압박이 이어졌다. 당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통신비인하는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고 언급하는 일까지 있었다.
통신사들은 이번에도 일단 정부 뜻을 따르겠단 방침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간담회가 끝난 뒤 “통신비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방통위와 통신사가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유쾌한 일은 아니라는 게 통신사들 생각이다. 통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체적으로 여러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정부가 그 이상의 것들을 계속 주문한다는 불만이 크다. 통신 3사는 5G ‘중간요금제’ 등을 내놓는 등 정부 방침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5G 요금의 하한선을 월 3만 원대로 낮추는 방안을 실무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통신사들의 수익성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가령 SK텔레콤의 경우 올 2분기 무선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은 2만 9920원으로 집계되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4% 줄어든 것이다. SK텔레콤의 이 수치가 3만 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19년 4월 5G 상용화 이후 처음이다. LG유플러스의 올 2분기 무선 ARPU도 2만 8304원으로 전년 대비 4.5% 빠졌다.
계속된 요금 인하 주문은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조치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설비 투자를 늘릴 여건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게 업계 측 입장이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이동통신산업·서비스 가이드 2023’ 자료를 통해 “통신은 10년마다 새로운 망을 구축해 차세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이용자 편익을 더해 요금으로 회수하고 이를 다시 망 투자에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통신요금 인하 요구는 통신산업 투자를 저해한다”고 꼬집었다.
통신비보다 비싼 단말기값이 핵심이라는 분석 또한 있다. 박완주 의원실(무소속)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이동통신 단말기 할부신용보험 지급 건수와 보험금 지급금액’ 자료를 분석한 결과 소비자가 구매한 단말기 비용은 올해 7월 기준 87만3597원을 나타났다. 2014년(62만 639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41%나 뛰었다. 통신사만 압박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반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일방적인 압박만으로 통신비 문제를 해결하긴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