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climate crisis).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올라가면서 기후 양상이 과거와 다르게 급격히 변화함에 따라 발생하는 모든 위험을 일컫는 말이다. 이전에도 기후 변화는 있었지만 점진적이고 자연스러웠다면, 최근의 기후 변화는 급격하며 기술의 발전에도 훨씬 더 예측이 불가능해졌다는 특징을 보인다. 세계 인류가 제강·시멘트 생산·산림 손실 등 산업화 과정을 겪으며 방출한 이산화탄소(Co2)와 같은 온실 기체는 지구의 열을 흡수해 지상에 열을 가뒀다. 이 열로 인해 지구는 점점 뜨거워져 수온이 상승하고 빙하가 녹으며 여러 기후 변화를 일으키고 인류는 속수무책이다. 이른바 ‘지구의 반격’이다.
◇봄인데 기온 38도까지 올라 폭염주의보…가을에도 이례적 무더위
1일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 9월 일본 근해의 해수면 온도는 평년보다 약 1.7도 높아 1928년 관측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 1999년과 2010년에 평년 대비 0.8도 높았던 것이 최고치였다. 특히 홋카이도 남동쪽 해역은 9월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3.8도나 높은 21.8도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일본 근해 해수면 온도는 8월에도 역대 최고였다.
해상 뿐 아니라 일본 열도는 7~8월에 이어 9월에도 이례적인 폭염이 지속됐다. 일본 기상청은 1898년 관측을 시작한 이후 올해가 가장 무더운 9월이었다고 밝혔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기상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달 평균기온이 24.91도로 이전에 가장 더웠던 2012년 9월의 23.76도보다 1.15도 높았다고 전했다. 도쿄도 지요다구와 오사카시 주오구, 후쿠오카시 주오구 등 대도시 도심의 9월 평균기온은 27.23도로 더욱 높았다.
이제 막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된 지구 남반구의 호주는 폭염 주의보가 발령됐다. 시드니의 기온은 이미 30도를 넘어섰다. 호주 일간지 디오스트레일리안 등에 따르면 호주 시드니의 낮 최고 기온은 30도를 웃도는데, 이는 평년 기온 대비 15도 가량 높은 수준이다. 호주 남부 일부 지역에서는 기온이 최고 38도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호주 기상청이 ‘심각’ 수준의 폭염 주의보를 발령했다.
호주 기상청은 9월에 이른 더위가 찾아온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와 뉴사우스웨일스(NSW)주, 빅토리아주 북동부 내륙 지역에서 기록적으로 높은 기온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기온이 빠르게 올라가면서 호주 당국은 대규모 산불을 걱정하고 있다. 벌써부터 NSW주에서는 크고 작은 화재들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 영향으로 시드니의 대기질도 크게 나빠진 상황이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스위스 알프스의 빙하는 최근 2년새 10%나 줄어들었다. 스위스 과학원(SCNAT)은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2022년 스위스 전체 빙하량 가운데 6%가 사라진 데 이어 2023년에는 4%가량 없어질 것으로 관측된다”고 밝혔다.
SCNAT 산하 빙하 관측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최근 빙하가 녹아내리는 속도는 급격히 빨라졌다”면서 “작년과 올해 빙하 소실량은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부터 올해까지 없어진 빙하량은 1960년부터 1990년까지 약 30년 간의 빙하 소실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빙하를 보유한 나라다. 국토의 전역에 알프스산맥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SCNAT는 스위스 전역의 빙하 가운데 1400여 곳에 관측 지점을 두고 얼음 상태의 변화를 주시해왔다. 스위스 발레 주 알프스 산지는 그동안 고도 3200m 이상이면 빙하 상태가 평형을 유지해왔지만, 최근에는 같은 고도에서도 얼음이 녹는 곳이 나오고 있다.
빙하의 급격한 소실 원인여름철 유럽 전역을 휩쓴 폭염에 얼음이 녹고, 겨울철 강설량마저 크게 줄면서 태양광을 반사해 빙하의 온도를 낮게 유지해 줄 눈이 부족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올해 여름이 1880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웠다고 발표했다. 빌 넬슨 NASA 국장은 성명을 통해 “2023년 여름의 기록적인 기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며 “애리조나와 미국 전역의 무더위에서부터 캐나다 각지의 산불, 유럽과 아시아의 홍수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기후 변화가 전 세계의 생명과 삶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서는 최근 2년간 기후 재해로 인한 재정지출이 2조 6000억 달러(약 3447조 원)를 넘어섰고, 올해에만 23건의 기후 재해가 발생해 253명이 사망했으며 각 재해당 10억 달러(1조 3259억 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했다.
◇뉴욕 시내가 물난리로 속수무책…그리스는 3주만에 또 홍수
한쪽에서 폭염으로 나타난 기후 위기는 다른 한쪽에서 폭우로 우리의 삶을 강타한다. 미국의 랜드마크인 뉴욕시는 기록적 폭우로 홍수가 잇따랐다. 지난달 29일 열대성 태풍이 뉴욕에 몰아치며 뉴욕 맨해튼과 브롱크스를 연결하는 할렘라인과 허드슨라인 등의 운행이 중단됐다. 라과디아 공항 일부도 폭우의 영향으로 임시 폐쇄됐고, 공항과 지하철을 연결하는 버스 운행도 중단됐다. 이와 함께 맨해튼 동쪽 이스트리버 강변도로인 FDR드라이브도 통제됐다.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는 이날 폭우를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라고 규정했고,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시민들에게 자택에서 머물 것을 권고했다. 뉴욕 맨해튼의 중심지인 센트럴파크 지역 강우량은 하루동안 5인치(약 12.7cm)를 기록했다. 2년 전 뉴욕 일대에 큰 피해를 준 허리케인 아이다 이후 최고 수치다.
호컬 뉴욕주지사는 폭우의 원인으로 기후 변화를 지목하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우리는 이것(폭우)이 기후변화의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불행하게도 이를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뉴욕에서) 100년이 넘도록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 9월은 본 적이 없다”며 “기후변화로 인해 작은 폭풍이 더 무섭게,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컬럼비아대 ‘돌발홍수(flash flood)’ 전문가 앤드루 J. 크루츠키에비츠는 “온도가 올라갈수록 대기는 더 많은 습기를 머금게 된다”며 기후변화가 더욱 불길하고 긴 폭우를 불러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북동부는 가을에 폭우가 발생하곤 했지만 이제는 여름에도 지속적인 폭우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는 폭우가 강타하면서 불과 3주 만에 또 물난리를 겪었다. 지난달 28일 AFP통신에 따르면 폭풍 ‘엘리아스’가 그리스 중부 지역에 상륙하면서 홍수가 시작됐다. 엘리아스가 몰고 온 폭우로 중부 항구 도시 볼로스는 도로와 주택이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차들은 급류에 휩쓸려 바다로 떠내려갔다.
그리스 소방청은 전날 볼로스 지역에 야간 통금령을 선포한 데 이어 밤새 불어난 물에 고립된 시민 250명 이상을 구조했다. 이번 홍수로 볼로스 지역 대부분에 전력 공급이 중단돼 주민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앞서 그리스는 불과 3주 전에도 폭풍 ‘다니엘’로 인해 17명이 사망했다. 일부 지역에는 24시간 동안 그리스 연간 강수량을 웃도는 600~800㎜의 비가 내렸다. 인구 14만명의 볼로스는 그 영향으로 2주 넘게 수돗물 공급이 끊겼고, 전력망 피해는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다. 폭풍 ‘다니엘’로 인한 혼란이 채 진정되기도 전에 또 다른 폭풍 ‘엘리아스’가 덮치자 주민들은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 농작물·가축 피해…글로벌 식량 위기
폭염과 가뭄, 폭우, 태풍 등 이상기후는 식량 위기로 직결된다. 농작물과 가축의 피해가 전세계를 막론하고 커지고 있어서다. 엘니뇨의 영향으로 인도의 몬순(우기) 강우량은 최근 5년간 최저치를 기록했다. 엘니뇨는 적도 지역 태평양 동쪽의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 경우 인도에서는 통상 몬순이 약해지고 건조해진다.
1일 힌두스탄타임스 등에 따르면 인도 기상청은 우기인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인도 강우량이 장기 평균의 94% 수준에 그쳐 2018년 이후 가장 적었다고 밝혔다. 월별로 보면 지난 6월에는 평년보다 9% 적었지만, 7월에는 13% 많은 비가 내렸다. 하지만 8월 강우량은 평년 64% 수준에 그쳐 통계 작성 이래 가장 건조한 8월이었다. 지난달에는 다시 평년보다 13% 많은 비가 내렸다.
지역별로는 인도 북서부와 인도 중부는 평년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남부(92%)나 북동부(82%) 지역은 평년보다 강우량이 크게 부족했다.
비가 적게 내리면 농업에는 악영향이다. 인도는 관개시설이 부족해 전체 농업의 40%를 빗물에 의존한다. 가뭄으로 쌀 수확량이 줄어들자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인 인도는 현재 쌀 수출을 상당 부분 제한하고 있으며 양파 수출에는 40%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인도 기상청은 이번 달도 인도 남부나 북동부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대부분 지역에서 평년보다 기온이 높고 비는 덜 내릴 것으로 예측했다.
엘니뇨의 영향으로 인도네시아의 건기가 길어지면서 팜유와 고무, 커피 등 인도네시아의 주요 수출 농산물 생산에도 차질이 생겼다. 인도네시아 만디리 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 인도네시아의 팜유 생산량이 7%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팜유 생산 1위 국가다. 팜유는 기름야자 열매를 찐 다음 압착해 추출한다. 주로 식용유로 쓰이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디젤과 섞어 바이오 디젤로도 활용한다.
또 커피는 최대 20%, 천연고무는 2%가량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봤다. 생산량이 감소하면 가격은 상승한다. 올해 팜유는 10%, 커피는 15% 오를 것으로 만디리 은행은 전망했다.
쌀과 옥수수, 밀 생산량도 줄어들 전망이다. 만디리 은행은 지구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쌀은 3.2%, 옥수수는 7.4%, 밀은 5%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만디리 은행의 산업·지역 연구 담당 부사장인 덴디 람다니는 “엘니뇨에 따른 농산물 가격 상승이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최대 0.8%포인트 끌어 올릴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식량 재고와 물가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폭염과 가뭄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란 점이다. 기상학자들은 엘니뇨로 인해 올해보다 내년에 더 강한 폭염과 가뭄을 예상한다.
호주도 폭염으로 올해 밀 수확량 예측치를 낮췄다. 호주는 지난 6~8월 겨울 평균 기온이 16.75도를 기록, 1996년에 세웠던 종전 최고 기록인 16.68도를 넘어섰다. 호주 기상청의 사이먼 그레인저 선임 기상학자는 “폭염은 농작물에 악영향을 주고 산불 위험을 높이며 더 강력한 폭염을 가져올 수 있다”며 “인간의 건강과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중부 지역은 폭우로 인한 침수 탓에 지난달 18만 마리가 넘는 가축과 가금류가 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