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커피 프랜차이즈 “주걱도 본부에서 사라”…필수품목 강매 실태 들여다보니

당정, 필수품목 강매 막을 법 개정 추진

필수품목 무분별 지정 및 가격 기습 인상시

법으로 제재…"관련 실태 조사도 시행할 것"

한기정(오른쪽)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가맹점주 피해 방지 및 보호를 위한 가맹사업 필수품목 제도 개선 민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 연합뉴스한기정(오른쪽)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가맹점주 피해 방지 및 보호를 위한 가맹사업 필수품목 제도 개선 민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 연합뉴스




국내 대표 한식 프랜차이즈 업체의 가맹점주 A씨는 주요 식재료인 소고기를 본부에서 구매하고 있습니다. 본부가 소고기를 ‘필수품목’으로 지정했기 때문입니다. 필수품목은 가맹 본부(프랜차이즈)가 브랜드의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본사에서 구매하도록 지정한 품목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본부는 소고기를 기존보다 낮은 품질의 부위로 변경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공급 가격은 올렸죠. 시중 가격과 비교해도 두 배 가까이 비쌌습니다. 하지만 소고기는 여전히 필수품목인 탓에 A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본부에서 소고기를 납품받아야만 했습니다.



비단 A씨만의 일이 아닙니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의 가맹점주인 B씨는 가맹본부의 일방적인 가격 인상에 경영 부담을 호소했습니다. 이 업체는 1년간 7번에 걸쳐 필수품목의 가격을 대폭 인상했는데, 품목 수가 51개에 달합니다. 기습적인 가격 인상뿐 아니라 필수품목을 과도하게 지정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국내 대표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 C사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탄산수에 자사 브랜드의 로고만 부착한 뒤 필수품목으로 지정, 반드시 본부에서만 탄산수를 사도록 했습니다. 심지어 주방에서 쓰는 주걱까지 필수품목으로 정해 각 가맹점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사전 협의없이 필수품목 확대·가격 인상시
과징금·시정명령 부과할 법적 근거 마련



이러한 ‘필수품목 강매’를 법으로 제재하는 방안이 추진됩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당정협의를 거쳐 ‘가맹사업 필수 품목 거래 관행 개선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내용은 △필수품목의 범위와 가격 산정 방식을 계약서에 명시하고 △필수품목을 확대하고 단가를 인상할 경우 가맹점주와 반드시 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부과받을 수 있습니다. 공정위는 “필수품목 관련 협의 시 점주의 권리가 계약을 통해 명확히 보호받을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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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포인트는 공정위에 필수품목 강매를 법으로 제재할 법적 근거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현행법에 따라 프랜차이즈는 ‘정보공개서’를 통해 필수 품목 운용 현황(품목 및 가격)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참고 자료일 뿐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가맹점주가 정보공개서를 확인한 후 프랜차이즈와 계약했더라도 추후 일방적으로 품목을 추가하거나 가격을 올려도 가맹점주는 프랜차이즈 본사에 계약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공정위는 “(법이 개정되면) 추후 본부와 점주 간 분쟁이 발생해도 조정 단계에서 가맹점주의 권리가 한층 두텁게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가격 산정 방식을 계약서에 명시하도록 한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공정위는 이번 대책에서 프랜차이즈를 ‘지식재산권을 파는 곳’이라고 명확히 정의내렸습니다. 물품을 공급하는 곳이 아닌 브랜드 등 지재권을 파는 곳이기에, 본부가 물품을 공급하며 마진을 취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일각에서는 기업과 개인의 계약에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국가가 공급 가격 수준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격이 어떻게 정해졌는지를 점주들에게 알리라는 게 핵심”이라며 “본부와 점주 간 정보 비대칭성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가이드라인’ 만들어 자율 개선 유도했지만
본사가 필수품목으로 취한 마진, 오히려 늘어




정부는 앞서 2020년 필수 품목 지정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업계의 자율 개선을 유도했습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가 필수 품목을 통해 가맹점 한 곳에서 취한 마진은 2020년 2100만 원(제과 제빵 기준)에서 2021년 2900만 원으로 오히려 올랐습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잠으로부터 받는 평균 마진(차액가맹금)도 연간 3000만 원에 달합니다. 치킨 가맹점의 경우 평균 3110만 원, 제과제빵은 2977만 원, 피자는 2957만 원이나 됩니다. 가뜩이나 불경기로 힘든 상황에서 본사가 취하는 평균 마진이 빠르게 오르며 가맹점주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습니다. 치킨 가맹점만 떼어 놓고 보면, 매출액 대비 차액가맹금 비중은 2020년 8.7%에서 2021년 10.3%로 올랐습니다. 제과제빵 역시 같은 기간 4.6%에서 6.4%로, 피자는 7.4%에서 8.4%로 뛰었습니다.

다만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본사와 가맹점을 갑을 프레임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입니다. 한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업계 경쟁이 치열해지고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가맹점주를 구하기도 힘들다”며 “이런 상황에서 갑질 프레임에 근거한 규제가 생기다 보니 본사의 경영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본부가 있어야 점주도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과도한 규제는 모두의 피해로 돌아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세종=곽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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