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원유 가격이 순차적으로 ℓ당 88원 인상되는 가운데 정부가 낙농 산업 선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올해부터 도입한 용도별 차등가격제로 원유 가격 인상 폭을 최소화하고 유업계와 유통 업계에 소비자 부담 완화를 요청해 우유 가격을 최대한 안정화했지만 이런 조치도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당장 2026년부터 미국 등에서 수입 우유가 무관세로 들어온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낙농 업계와 소비자단체·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TF)를 구성해 낙농 산업 중장기 발전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5일 농식품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빙그레는 6일부터 바나나맛우유·굿모닝우유 등의 가격을 5~6%씩 올린다. 서울우유협동조합 역시 이달 1일부터 ‘나100% 우유’ 1ℓ의 출고가를 3%(대형마트 기준) 인상했다.
정부가 유통 업계에 적극적으로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해 대형마트에서 900~1000㎖ 흰 우유 가격을 2000원대로 억제했지만 언제까지 ‘협조 요청’ 카드가 먹힐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밀크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 공포는 현실화하고 있다. 빙그레와 해태아이스크림이 6일부터 아이스크림 제품 가격을 올리는 등 우유를 재료로 쓰는 빵과 아이스크림 가격의 도미노 인상이 우려된다.
이마저도 정부가 최대한 가격 인상을 억제한 데 따른 결과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원유의 생산가격은 ℓ당 115.76원(13.7%) 늘었다. 지난해까지 적용됐던 생산비연동제에 따르면 올해 원유 가격은 ℓ당 최소 104원, 최대 127원 올랐어야 하지만 우유 소비에 따라 가격이 변하는 용도별 가격차등제가 적용되며 ℓ당 88원 인상으로 막았다. 이에 유업계와 유가공 업계 모두 적자와 수익 감소에 허덕이는 만큼 낙농 산업 선진화를 위해 정부의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2026년부터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시작으로 호주·뉴질랜드산 우유가 무관세로 들어온다. 이대로면 2001년 77.3%에서 지난해 44.8%로 폭락한 우유 자급률이 더 떨어지는 것은 물론 낙농 산업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낙농가, 유업체, 유가공 업체 모두를 중재해 낙농 산업의 파이 자체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올해부터 본격 시행된 용도별 차등가격제의 안정적 정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윤성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모든 유제품을 똑같은 우유로 만들 필요는 없다”며 “용도별 차등가격제 정착을 통해 우리 우유의 고급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홋카이도에서 특색 있는 고급 유제품을 내놓은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지리산 우유’ 등의 브랜드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저렴한 수입산 우유와도 경쟁하려면 고급화·규모화가 필수”라며 “이 과정에서 정부는 낙농가에 사료 값 안정화기금을 지원하고 국산 우유로 가공 제품을 만드는 유업체를 지원하며 동시에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도록 한국 토양에 맞는 사료 종자 개발에도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지인배 동국대 교수도 “낙농 업계가 살아남으려면 고급화가 필수”라며 “소비자, 생산자, 유통 업체의 입장을 조율하는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지 교수는 “소비량이 많은 마시는 우유(시유) 가격을 높게 유지해 낙농가들에 시간을 벌어주면서 가공유 가격을 낮춰 우리나라 유가공 제품의 국제적 경쟁력을 빠르게 키워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시장 개방을 앞둔 만큼 대책도 촉구했다. 지 교수는 “아직은 국내 소비자들이 국산에 대한 로열티가 있지만 해외 우유가 들어오고 소비자들이 ‘수입 우유도 괜찮네’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우리나라 낙농업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