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의 적용 범위와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이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8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발간한 '2023 직장 내 괴롭힘 판례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법원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노동자의 직장 내 괴롭힘 피해와 책임을 인정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법원 판례와 하급심 판결 등 관련 판결례 87건을 분석한 보고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월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민사1부(전기흥 부장판사)는 극단적 선택을 한 캐디 A씨의 유족이 건국대 법인과 관리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유족에게 1억7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A씨가 관리자의 폭언과 모욕에 시달렸다며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인정하면서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켰다면 그 피해자가 반드시 근로자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지난 7월에는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도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부과하는 하급심 판결이 나와 확정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72단독 류일건 판사는 아파트 관리업체의 부당인사에 관여한 입주자대표에게 400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 입주자대표는 임금 체불에 항의하는 관리직원 2명의 대기발령을 관리업체에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판결도 소개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2단독 이관형 판사는 지난 6월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 소속 보육교사가 원장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 따른 공식적 활동 기록이 없다며 서사원에 53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직장갑질119 장종수 노무사는 "법원이 법 적용 대상인 근로자뿐만 아니라 비근로자에 대한 괴롭힘을 인정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며 "이제 사각지대를 없애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이뤄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