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11일부터 민영화 중단을 촉구하는 2차 공동 파업에 돌입한다. 의료연대본부 소속 서울대병원분회·경북대병원분회 등 일부 종합병원도 파업 동참을 선언하면서 진료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대·보라매병원, 11일 3700여명 무기한 총파업 돌입 예고
9일 민주노총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지난 4일 파업 전 마지막 조정회의를 가졌지만 조정이 결렬됐다. 서울대병원분회인 서울대병원 본원과 보라매병원은 앞서 의료공공성 강화와 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며 11일 조합원 3700여 명이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지난달 22~26일 총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89.4%의 조합원이 참여한 가운데 찬성률 95.9%로 파업 돌입안이 가결됐다.
노조는 "파업을 막기 위해 병원장을 포함한 4대4 교섭을 제안했지만 병원 측이 수용안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며 "공공의료에 대한 어떤 계획도 내놓지 않는 등 파업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대병원 본원과 동작구 소재 보라매병원은 지난 7월부터 16차례에 걸쳐 노사 간 단체교섭(본교섭)을 벌였다. 의사 성과급제를 폐지하고, 공공의료 수당을 신설하라는 게 노조 측의 요구사항이다. 그 밖에도 △어린이병원 병상수 축소 금지 및 무상의료 시행 △환자정보 보호 △영리자회사 축소 등 의료공공성 강화 △필수인력 114명 충원 △실질임금 인상 및 노동조건 향상 등을 병원 측에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관계자는 "내년으로 예정된 서울대병원의 어린이병원 리모델링 계획안에는 150평 중 3층 전체(134평)를 교수 휴게실로 만들고 병상 수를 14개 줄이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며 "환자 부담을 높이고 공공병원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간이 부족하다면 대안을 만들어 어린이병원 병상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국립대병원, 고질적인 인력난…전국 곳곳에 파업 불씨 남아
비단 서울대병원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서울대병원분회의 핵심 요구사항 중 하나인 인력충원은 대부분의 국립대병원들의 숙제로 남아있다. 인력부족은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적극적인 충원이 필요하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노조에 따르면 국립대병원에서 퇴직하는 간호사는 59%에 달한다. 입사 2년을 채우지 못한 채 그만두는 인원도 적지 않다. 서울대병원 본원의 경우 중환자실 간호사 1명당 환자 수가 3~5명에 달하고, 보라매병원 내과 중환자실의 경우 지난 10개월간 간호사 16명이 업무 강도를 이유로 퇴사했다. 서울대병원분회는 올해 서울대병원 64명, 보라매병원 53명 등 총 117명을 충원하고, 병가·청가·휴가 등 상시적인 결원에 대한 660명의 대체인력을 채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대병원의 경우 경영진이 독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기재부의 총액인건비와 총정원제에 묶여 인력확충은 물론, 임금 인상도 임의로 결정하기 어렵다. 실제 서울대병원은 작년 11월에도 공공성 강화와 인력 충원 등을 요구하며 사흘간 총파업을 벌였다.
올해는 서울대병원경북대병원 등 10곳이 참여하는 국립대병원협회가 총인건비 제한에서 의사직을 빼달라고 제안한 점이 파업의 불씨를 당긴 것으로 전해진다. 노조 측은 “정부의 총액인건비 규제 때문에 직원들의 실질임금이 삭감되는 상황이다. 민간병원과의 임금격차로 인한 인력부족 대안으로 공공의료수당 신설을 제안했지만 김영태 병원장이 거절했다"며 "서울대병원 운영위원회가 지난달 의사들의 진료수당 인상안을 통과시키는 등 의사직 임금 올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서울대병원이 2023년 의사직에 대해 ‘진료기여수당’ 명목의 성과급으로 435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고 469명의 의사들 대상으로는 '진료 수당(외래진료 시 시간당 수당을 책정해 지급)' 100억 원을 추가 지출하기로 결정했다. 의사직에게만 총 706억 원이 지급되는 셈"이라며 "의사를 제외한 나머지 직역의 이탈을 막으려면 실질적인 임금인상을 실시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 경북대병원도 11일 파업 예고…13개 국립대병원들로 확산할까
또다른 국립대병원인 경북대병원도 11일 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과 함께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예고한 상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대구지역지부 경북대병원분회에 따르면 쟁의행위 찬반투표에 조합원 82.4%가 참여한 가운데 91.7%가 찬성표를 던졌다. 이들은 지난 6일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조정 회의를 가졌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노조는 간호 인력 충원, 임금 인상 등을 요구했지만 병원 측은 국립대병원은 공공기관 운영 방침에 따라야 한다며 하계휴가비·연차유급휴가·식대·자동 승급 등 폐지도 고수하고 있다.
경북대병원분회는 파업 시 필수유지업무를 위한 인원을 남겨둔다는 입장이지만, 조합원이 의사를 제외한 간호사 등 전체 인력의 43%를 차지하는 터라 파업을 강행할 경우 진료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와 별개로 의료연대본부는 오는 12일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간병사 등 병원노동자 및 돌봄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한 공동 총파업 및 총력 투쟁을 계획 중이어서 현장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 병원을 제외한 국립대병원들로 파업 참여가 확산할 경우 파장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전국국립대병원노동조합 연대체는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경북대병원·서울대병원에서 진행되는 교섭에서 노조의 요구안이 수용되지 않으면 오는 10월 12일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연대체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료연대본부 소속 13개 국립대병원 노조로 구성됐다.
의료계 관계자는 "병원에서 파업이 벌어지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와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의료 파업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정부도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