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일본은행 ‘복면 개입’





지난해 10월 21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장중 달러당 151.94엔을 찍은 후 갑자기 144.50엔까지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5조 5000억 엔 규모의 엔화를 몰래 사들이는 ‘복면 개입(覆面 介入)’에 나섰다는 추정이 나왔다. 하지만 일본 당국자들은 이 같은 언론 보도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투기적인 엔화 움직임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원론적 언급만 했을 뿐이다.



복면 개입은 일본 통화 당국이 외환시장 개입 여부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은밀하게 환율 조정에 나서는 것을 뜻한다. 투기 세력이 당국의 움직임을 읽을 수 없도록 혼란을 줘 개입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여기에는 공개적인 시장 개입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간다 마사토 일본 재무성 재무관은 지난해 9월 장 마감 이후 별도의 기자회견까지 자청해 24년 만에 단행된 200억 달러 규모의 외환시장 개입 사실을 공개했지만 반짝 효과를 얻는 데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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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은밀한 외환시장 개입은 1998년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 절정에 달했다. 일본 통화 당국은 그해 4월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33엔까지 떨어지자 3개월에 걸쳐 대대적인 시장 개입에 나섰다. 일본 당국은 시장 개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거래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른 아침 시간대를 틈타 공격적인 개입에 나서거나 자신들의 정체를 숨긴 채 외국 중앙은행에 위탁하는 전략을 동원하고 있다.

최근 엔·달러 환율이 요동치는 가운데 일본은행이 또다시 복면 개입에 나섰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3일에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크게 출렁였다. 장중 한때 달러당 150.16엔까지 오른 후 147엔대로 떨어졌다가 다시 149엔대로 돌아갔다. 간다 재무관은 시장 개입 여부에 대해 “코멘트를 삼가겠다”며 확답을 피했다. 하지만 인위적인 외환시장 개입은 단기적이고 제한적인 효과에 그칠 수밖에 없다. 환율은 국가신용도를 보여주는 거울인 만큼 경제 기초 체력을 키워 경쟁력을 개선하는 것이 근본 대책이다.

정상범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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