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존엄한 죽음) 교육의 어머니.’ 홍양희(74·사진) 사단법인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사실모) 공동대표의 별명이다. 그는 20여 년 전부터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돌아보며 웰다잉을 맞이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펴왔다. 2011년부터는 환자가 회생 불가능한 상태가 될 때 인공호흡기 부착과 콧줄 영양 공급 등을 거부하는 ‘사전의료의향서’ 확산에 나섰다.
홍 대표는 9일 서울 성북구 보문로에 있는 사실모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고 ‘웰다잉이 웰빙’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제강점기·한국전쟁·보릿고개·산업화 등 간난신고를 겪은 어르신들의 인생 마무리를 도와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웰다잉 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1988년 5년간의 국회의원 보좌관직을 마치고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현 각당복지재단) 초대 총무로 일하면서부터다. 초기에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과 비행 청소년 상담사 양성에 나섰다. 이후 고(故) 김옥라 당시 각당복지재단 이사장이 1991년에 설립한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에 적극 참여했다. 홍 대표는 “국내에서 죽음 준비 교육을 처음 공론화한 김 이사장을 모시고 활동할 때 어르신들이 ‘죽는 것도 서러운데 불길하게 무슨 죽음 얘기냐’며 화를 냈다”면서 “그만큼 죽음이라는 단어조차 금기시하던 때였으나 유럽·미국·일본에서는 이미 대학에서 ‘죽음학’을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홍 대표는 “전남 벌교가 고향인데 초등학교 입학 전 운동장에 거적때기에 싸여 있던 빨치산의 주검이 가득한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이후 동네에서 상여가 나갈 때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각당복지재단 부회장이던 2002년 처음으로 죽음교육지도자과정(2년제)을 이끄는 등 웰다잉 전도사로 나섰다. 당시 목회자, 스님, 전문직 은퇴자, 사회복지 전공자 등이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도록 지원했다. 웰다잉 독서 모임인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조직하기도 했다. 그는 독서광으로 국회 보좌관 시절 도서관 확대를 위한 도서관법 개정의 국회 통과에 기여한 바 있다. 2007년에는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성당·교회·복지관 등에 웰다잉 강사를 파견했다. 이때 장두이 서울예대 교수와 함께 웰다잉 연극단을 창단, ‘춤추는 할머니’ ‘립스틱 아빠’라는 연극을 만들어 양로원·복지관 등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2009년 서거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사전 연명 치료 거부와 안구 기증 의사, 세브란스병원에서 투병 중이던 ‘김 할머니’에 대해 인공호흡기를 떼라는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홍 대표는 이에 맞춰 연세대 보건대학원 생명윤리정책센터가 제안한 ‘사전의료의향서’ 서식 개발에 참여했고 2012년 사실모 발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2012~2013년에는 교보생명의 지원으로 음악·미술·시까지 활용한 웰다잉 지도자 양성과 교육 확산에 나섰다. 웰다잉 교육이 매뉴얼대로 전국적으로 확산된 게 이때부터다. 그가 사실모의 대표로서 펼친 의향서 실천 운동은 전국적으로 파급되며 국회에서 관련 법이 제정되는 촉매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16년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본인 결정이나 가족 동의로 연명 치료를 받지 않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기까지 사실모가 배포한 의향서가 30만 부에 달할 정도다. 홍 대표는 “죽음은 당하는 게 아니라 마지막 성장의 과정으로 맞이한다고 이해할 때 웰다잉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모는 2019년부터 상담사를 통해 의향서를 작성한 어르신들의 인생을 구술받아 매년 자서전을 펴냈다. ‘모든 삶은 경이롭다’ 등 총 4권의 자서전에 평범한 어르신 153명의 생애를 담았다. 홍 대표는 “기막힌 인생사에도 감사를 표하는 것이 공통점”이라며 “이분들과 호흡하는 상담사들의 열정과 헌신에 항상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에도 웰다잉 상담사 전문 자격증 제정 등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성북동 예닮교회 권사인 그는 스위스·캐나다·네덜란드 등이 허용하는 안락사에 대해서는 “고통 없는 임종도 좋지만 귀한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단하면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와 지역사회가 협력해 호스피스를 잘 운영하는 영국을 참고해 환자의 통증 완화와 가족과의 의미 있는 이별을 할 수 있는 기반을 확대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