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7일 국내 금융회사에서 금융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수익 위주의 조직 문화’ 때문이라고 보고 “경영진이 정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수익을 내면 망가지고 조직에서 좋은 커리어를 절대로 쌓을 수 없다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25회 서경 금융전략포럼’에서 금융권의 지속가능 경영을 강조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내가 수익만 내주면 여기(금융회사)에서 승진하고 조직에서 여러 혜택을 받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100% 금융 사고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금융권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금융 사고가 수익이나 성과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조직 문화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조직 문화를 경영진이 책임지고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김 위원장은 밝혔다.
김 위원장은 금융회사들의 효율적인 내부통제 방안과 관련해 책무구조도 도입을 언급하면서 “책무구조도는 결국 내부통제와 관련해 임원들이 자기의 책임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책무구조도만으로 문제가 100%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도입이 되면) 지금처럼 모호했던 책임을 보다 명확하게 할 수 있고, (책임 소재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금융회사 내부에서는 최고책임자들이 내부통제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경제금융 환경과 금융정책 방향’을 주제로 한 이날 기조강연에서 국내 금융시장이 처한 위기를 진단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원칙도 밝혔다. 변동금리에 치중된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를 개선하고 새로운 기업이 향후 우리 경제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 시스템 안정, 민생 지원, 기업 성장동력 지원, 금융 산업 발전 등 네 가지는 금융위가 관심을 갖고 항상 제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핵심 사안”이라며 “이 사안들에 중점을 두게 된 배경은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세 가지 거시적인 난관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꼽은 세 가지 환경은 과도하게 누적된 부채와 잠재성장률·성장동력 둔화, 글로벌 복합 위기 등이다.
그는 “지금 정부가 처한 상황을 보면 부채가 굉장히 많은 상태라는 것이 하나의 큰 부담”이라며 “부채가 많아도 그만큼 금융자산이 있거나 돈을 잘 벌고 있다면 문제가 없을 텐데 현재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고 또 상환 능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과거에 제대로 안 됐다”고 짚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채(가계+기업) 비중은 221.5%로 2016년 181.7%보다 40%포인트 가까이 불어났다. 2016년에 36% 수준이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중도 지난해에 50%로 늘었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예상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30년 1.29%에서 2040년 0.29%, 2050년 -0.03% 등으로 지속적으로 저하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위원장은 “부채는 많고 부채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은 둔화된 상태인데 더 큰 문제는 금리가 급격하게 인상됐다는 것”이라며 “금리가 갑자기 인상되면 유동성 위험, 신용경색, 경기 침체가 따라붙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가계부채를 관리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가계부채가 시스템 위기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은 “부채가 많은 게 문제인 것은 첫째는 충격이 왔을 때 차주가 상환 불능, 연체 상태에 빠지고 이것이 금융회사의 부실로 이어진다는 게 있고 둘째는 소비가 위축된다는 점이다”며 “하지만 적어도 시스템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금융 부채는 고신용자 차주가 70% 이상 되는 등 고소득층이 가진 부채가 많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까다롭게 하는 등 완충장치(버퍼)가 많아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시스템 위기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기준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자금 경색이 일어난 가운데 자본시장의 안정을 위해 유동성 공급을 시행한 것에 대해서는 “구조적으로 살 수 없는 기업을 살리겠다는 것은 절대 아니며 일시적 시장 불안으로 영향을 받는 기업이나 차주를 보호한다는 기본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가계는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빌리게끔 하고, 기업은 능력이 없는 곳까지 모두 살리지는 않겠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부동산 시장 리스크도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일각에서는 부동산 규제를 완화한 것 때문에 가계부채가 늘어난다고 하지만 규제를 완화했어도 과거에 비하면 완화한 게 없다”며 “과거에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이상하게 짜였던 부동산 규제를 ‘상식 수준’에 맞게 정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금융감독원의 경우 전국의 몇 천 개 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도 하나하나 관리하고 있는데 전 세계 금융 당국 중 PF 사업장을 직접 관리하는 것은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 결과 고비만 넘기면 살 수 있는 곳 등 살릴 수 있는 사업장은 금융위와 협의해 살림으로써 시장이 한 번에 무너지는 걸 막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