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노동개혁을 외면하는 나라

오철수 선임기자

경쟁국들은 노동 대수술 나서는데

우린 정부도 국회도 나홀로 역주행

이 와중에 야당은 노란봉투법까지

정기국회에서 노동현안 힘 모아야

오철수 선임기자오철수 선임기자




이달 18일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제인협회를 비롯한 경제 6단체의 상근부회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제 통상 환경이 날로 악화되는 와중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들은 왜 한자리에 모였을까. 그만큼 사정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요즘 국내외 사정을 보면 프랑스는 물론이고 이탈리아·그리스 등 나라마다 노동 개혁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 우리만 한가한 모습이다. 정부는 노동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고치겠다고 선언했지만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의 로드맵만 밝혔을 뿐 후속 작업은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는 노동시장 경직성 해소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이 얼마나 경직돼 있는지는 노동 관련법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근로기준법 23조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휴직 등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업무 성과가 떨어지는 직원들을 내보내는 통로가 사실상 차단돼 있다. 또 24조에서는 ‘사용자가 경영상의 이유에 의해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원에서 경영상의 해고 사유에 대해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은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는 회사 사정에 따라 그때그때 필요 인력을 채용하고 싶지만 기존 직원을 내보내기가 어렵다 보니 신규 채용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은 임금체계도 마찬가지다. 노동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하려면 임금체계를 호봉제에서 성과급 위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임금체계를 변경하려면 근로자 과반 또는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어렵다. 미국과 영국·프랑스 등 다른 선진국에서 모든 업종에 대해 허용하는 파견 업무를 몇몇 업종으로 제한하는 것도 기업들의 운신 폭을 좁게 만들고 있다.

관련기사



노동조합법은 또 어떤가. 노조법은 파업 시 사업장 내의 생산 시설 등 주요 시설만 점거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가 이를 악용해 출입문 등을 봉쇄할 경우 기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노조의 불법 직장점거를 막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 직장 폐쇄도 엄격한 요건이 걸려 있어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또 필수 공익사업장을 제외하고는 파업 시 대체근로를 할 수 없게 규정해놓고 있어서 노조는 이를 믿고 툭하면 파업을 하기 일쑤다. 게다가 부당 노동 행위는 처벌 대상을 사용자에 국한하고 있고 노조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가 없다. 야당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불법 파업과 관련해 근로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고 사용자 개념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노조법(노란봉투법) 개정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이러니 노동 경쟁력이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노동시장 경쟁력은 64개국 가운데 39위에 머무르고 있다.

경쟁국들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국회에 있다. 국회 의석의 절대다수를 야당이 차지하고 있다 보니 노동 개혁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회에서 통과된 노동 관련 법안만 봐도 알 수 있다. 경총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처리된 고용·노동 관련 법안 255건 가운데 규제 해소 등을 통해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법안은 23건에 그쳤다. 그나마 코로나19에 따른 외국 근로자 취업 활동 연장 등이 포함됐을 뿐이다. 반면 노동 규제를 강화하는 법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제 21대 국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정기국회가 끝나면 바로 차기 총선 체제로 돌입하기 때문에 노동 개혁 법안을 처리할 시간이 별로 없다. 경쟁국들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 개혁에 팔을 걷고 나서는 상황에서 우리만 거꾸로 가면 기업 투자는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국내 고용 사정이 악화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정부도 국회도 노동 개혁 현안 처리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오철수 선임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