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모습. 연합뉴스국민연금공단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증대를 위해 투자 대상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고려한 책임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실제 투자 집행 과정에서는 일부 이율배반적인 행보를 보였다. 일부 기업이 최다 중대재해 발생 논란을 일으켰음에도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온 것이다. 심지어 사망 사고 발생 바로 다음날에 해당 기업의 주식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이 제출한 자료와 금융감독원 전자 공시 시스템 등을 분석한 결과 국민연금공단은 9.78%(9월 21일 기준)의 지분율로 DL이앤씨의 2대 주주인 것으로 나타났다. DL이앤씨는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건설 현장에서 총 7번의 사고로 8명이 숨지면서 ‘사망 사고 최다 발생 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국민연금은 계속되는 중대재해 사고에도 불구하고 DL이앤씨에 대한 지분율을 10% 내외 수준으로 꾸준히 유지했다. 국민연금의 DL이앤씨 지분율은 중대재해법 시행 전인 2021년 4분기(12월 31일 종가 기준) 13.0%에서 지난해 4분기에는 11.0%로 2.0%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쳤다. 그 사이 DL이앤씨에서는 네 번의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
사망 사고 발생 다음날에 주식을 매수한 경우도 있었다. 7월4일 경기도 의정부 건설 현장에서 현장 노동자가 콘크리트 타설 장비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DL이앤씨에서 발생한 다섯 번째 사망 사고였다. 국민연금은 사고 발생 바로 다음날인 5일 DL이앤씨의 주식 1025주를 장내 매수했다. 같은 달 7일에는 4088주를 추가 매수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가치 투자’의 일환으로 고유의 ESG 평가 체계를 마련해 연 2회 정기 ESG 평가를 실시한다. 운용역들이 투자 의사 결정 시 평가 결과를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평가는 총 6개 등급(AA·A·BB·B·C·D)으로 분류된다. 이 중 ‘C’와 ‘D’는 하위 등급에 해당한다. DL이앤씨는 국민연금이 지난해 진행한 두 번의 ESG 정기 평가에서 모두 하위 등급 평가를 피했다. 지난해 DL이앤씨에서 4번의 사고로 5명이 사망한 점을 감안하면 국민연금이 중대재해를 가벼운 사안으로 여기거나 ESG 평가 체계가 부실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게 김 의원 측의 설명이다.
그 사이 DL이앤씨의 주가는 첫 번째 사망 사고 발생일(2022년 3월 13일) 6만 7104원(무상증자로 인한 변경 기준가)에서 3만 3200원(이날 종가 기준)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김 의원은 “국민연금의 이 같은 행태는 연기금의 손해뿐만 아니라 기업들에 ‘몇 번의 중대재해쯤은 괜찮을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부의장).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