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9일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 전략의 핵심은 국립대병원의 역량을 대폭 끌어올려 고사 직전인 지역·필수의료를 소생시키는 데 있다. 지방 환자들이 지역 내 병원 시스템을 믿지 못해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 원정 진료에 나서는 쏠림 현상이 심각한 데다 정작 지역에서는 필수의료 공백으로 응급 환자를 적기에 치료하지 못하는 의료 생태계 붕괴 현상이 심각하다는 판단이다.
우선 정부는 국립대병원을 지역 내 필수의료 전달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컨트롤타워로 세우고 재정 지원 및 규제 완화 등 패키지 지원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국립대병원의 소관 부처를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옮기기로 했다. 국가 보건의료정책 입안 과정에서 국립대병원의 역할과 참여를 늘리고 예산·조직 등을 총력 지원하기 위해서는 의료정책을 총괄하는 복지부 소속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소관 부처가 바뀜에 따라 복지부가 추진하는 지역 의료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전공의 정원 조정’도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국립대병원에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분야 교수 정원을 대폭 확대하고 인건비 규제도 완화하기로 했다. 현재 국립대병원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인건비 총액을 기획재정부가 해마다 정하는 인상률 상한 이내에서 책정할 수 있고 정부가 정해준 정원만큼만 교수 수를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연간 인건비 인상률이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1~2%에 불과하고 각 병원에서 인력 증원을 요청해도 기재부가 찔끔찔끔 인력 배정을 해준 탓에 탄력적인 인력 운용이 어려웠다. 지난해 전국 국립대병원에서 총 4799명에 대한 인력 증원 요청을 했지만 배정된 인원은 1735명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는 기재부와의 협의를 통해 인력 운용에 관한 예외 조항을 신설하는 등 인력 확보를 위한 걸림돌을 제거해나가겠다는 구상이다.
국립대병원에는 중환자실·응급실의 병상·인력 확보를 위한 비용을 지원, 지역 내에서 ‘골든아워’ 안에 응급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만 수익성은 떨어지는 필수의료 센터에 대한 보상도 계속 강화한다. 국립대병원이 지역 필수의료 자원을 관리하고 공급망 총괄 등을 주도하도록 ‘권역 책임의료기관’으로서 권한도 더 실어줄 방침이다.
정부는 또 전폭적인 투자를 통해 국립대병원의 연구개발(R&D) 역량도 끌어올리기로 했다. 2033년까지 한국형 의료고등연구계획국(ARPA-H) 프로젝트에 총 1조 9000억 원을 투입해 국립대병원 등이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혁신형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혁신 의료기술이나 신약·신의료기기 개발 등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마중물 투자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필수의료를 고도화하겠다는 복안이다.
노후화된 장비를 교체하기 위한 인프라 투자도 늘린다. 정부는 중증·응급 진료 시설 및 병상, 공공 전문 진료 센터 등 노후화된 인프라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현행 진료 시설과 장비에 투입되는 정부 지원 비율(25%)을 교육 연구 시설(75%) 비율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이다. 이를 위해 재원 확보 창구도 늘린다. 현행 국립대병원은 공공기관으로 기부금품 모집이 불가하다. 복지부는 인건비 규제처럼 예외 규정을 적용해 인프라 첨단화를 위한 기부금 모집 허용을 추진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이번 대책의 시행을 위해 지역·필수의료 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관리해 나가기로 했다. 법이나 제도 개선, 재정 투자 확대가 필요한 경우에는 TF 논의를 바탕으로 관계 부처와 협의할 계획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국립대병원의 역량을 수도권 대형 병원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높여 지역에서 중증 질환 치료가 완결될 수 있도록 하고 필수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의료 전달 체계도 긴밀히 협력하는 체계로 정상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