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035720)의 투자·재무를 담당하던 고위 임원이 한달 새 사라지면서 회사의 장기 비전과 전략을 챙길 컨트롤타워 역할에 공백이 생기게 됐다. 카카오는 이외에도 그간 쪼개기 상장, 임원 먹튀 논란 등 외풍에 시달리며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는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차세대 기술과 산업 트렌드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에 시세조작이라는 또 한번의 거대한 암초를 다시 만나면서 네이버와 형성해 온 국내 테크 기업간 양강 구도에도 균열이 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9일 김지숙 서울남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SM과의 하이브 인수 경쟁 과정에서 시세 조종 의혹을 받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에 대해 “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함께 구속영장이 신청된 강모 카카오 투자전략실장, 이모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 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다만 구속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되지 않았지만 범죄 혐의에 대해 “혐의 내용은 중대하다”고 김 부장판사는 덧붙였다. 지난 8월 김 창업자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던 검찰은 조만간 김 창업자에 대한 소환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배 투자대표가 구속되며 카카오의 재무와 투자를 도맡던 재무·투자 관련 최고 임원들 자리가 한달 사이에 공백이 됐다. 지난달에는 한 부사장급 재무그룹장이 회사 법인카드로 1억 원 상당의 게임 아이템을 결제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정직 3개월 처분을 받고 업무에서 배제됐다. 자체 징계로 마무리되는가 했던 이 사안은 카카오 노동조합의 고발로 현재 경찰 수사 대상이 됐다. 장기 호흡에서 회사의 곳간을 운영하고 투자를 이어가야 할 재무, 투자 담당 고위임원들이 연달아 업무에서 이탈하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대처할 역량과 투자 전략 수립 등에 당장 적신호가 켜졌다.
이에 앞서서도 쪼개기 상장, 경영진 먹튀 논란 등 각종 외풍에 시달려 온 카카오는 차세대 기술, 산업에서 뾰족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특히 디지털 전환 붐을 타고 고속성장하고 있는 클라우드 산업에 야심차게 진출했지만 카카오 공동체에서 클라우드 사업을 전담해온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클라우드 관련 조직을 개편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다른 차세대 먹거리로 떠오르는 인공지능(AI), 특히 생성형 AI 기술 부문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테크 기업과 통신사들이 신속히 대규모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자체 모델을 기반으로 빠르게 사업화에 뛰어든 것에 비해 뒤쳐져 있다는 평가다.
카카오가 외풍에 흔들리면서 국내 테크기업 양강 구도를 형성해 온 네이버와의 격차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 2년 전 10%에 가까웠던 카카오의 영업이익률은 5% 아래로 떨어졌다. 그사이 2배 가량 차이를 유지했던 양사의 영업이익은 지난 2분기 기준 3배 넘게 벌어졌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 기준 네이버의 오는 3분기 매출은 2조 4625억 원, 영업이익은 3683억 원으로 각각 전년대비 19.7%와 11.5%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카카오는 매출 2조 2355억 원, 영업이익 1368억 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3% 증가해 2분기 연속 분기매출 2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보이지만 영업이익은 9%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술 기업으로서는 상황 변화에 따른 재빠른 경영 판단이 특히나 중요한데 카카오의 경우 외부 변수에 오래 발목 잡히고 있어 뼈아픈 상황이다. 이번 리스크와 별개로 대체자를 앉혀야 하지만 수사가 김범수 창업자까지 향하면서 그럴 여력도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