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절반이 현재 휴일로 지정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꾸려면 모든 구가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청주·울산 등 각 지방이 하나둘 의무휴업일 전환에 나섰지만 서울시는 시와 자치구의 ‘핑퐁게임’ 속에 제대로 된 공론화의 장조차 열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22일 서울경제신문이 서울 25개 자치구 구청장의 입장을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구 내에 대형마트가 없는 3곳을 제외하고 50%인 11곳이 동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중 한 곳은 소상공인·마트·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의를 통해 적극 검토 중이며 또 다른 4곳은 의향은 있으나 독자 추진에 부담을 갖고 있었다. A 구의 한 관계자는 “밀집도가 높고 생활 반경이 중첩되는 서울시의 특성상 특정 구만 변경하면 시민들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역시 2012년 이후 10년이 넘은 대형마트 일요일 휴무에 대해 손을 댈 시기가 됐다는 입장이다. 과거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갈등 구도를 넘어 이제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유통 환경이 변하면서 마트·시장이 상생 파트너로 대응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달 16일 국정감사에서 “(일요일 휴무는) 실효성이 없어 지역별로 진척될 수 있도록 (평일 변경을) 독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의무휴업일 지정은 구청장 등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이다. 서울시의 경우 서울시장이 아닌 구청장이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이유로 한 발 물러서 있다. 반면 개별 구의 경우 피해를 걱정하는 시장 상인 및 휴일 휴식권 보장을 외치는 대형마트 직원들의 반발을 우려해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다. B 구 관계자는 “이해 당사자와의 협의가 우선이며 일괄적인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시는 자치구, 구는 시만 바라보면서 공회전만 하는 셈이다. 다만 서울시 관련 조례를 보면 ‘시장은 구청장이 명할 때 시 전체가 동일하도록 구청장에게 권고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B 구의 한 관계자는 “최초 시행할 때도 법령 취지를 고려하고 혼란을 막기 위해 매월 둘째·넷째 일요일로 서울시 전 자치구가 통일했다. 평일로 바꾸는 것도 통일성 있는 기준과 절차가 아니라면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에서 ‘총대’를 메고 25개 구와 함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방에서는 이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속속 전환하고 나섰다. 대구시는 올 2월부터 월요일 휴무로 바꿨고 청주시는 5월부터 기존 일요일에서 매월 둘째·넷째 수요일로 변경했다. 이 외에도 고양·안양·과천·하남 등 시 차원에서 평일로 전환한 지방자치단체가 적지 않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국민제안 사이트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안건도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였다.
이는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일요일 휴무에 따른 전통시장 활성화 효과가 크지 않은 데다 소비자 불편을 초래하고 온라인 업체만 반사이익을 누리기 때문이다. 대구시가 한국유통학회에 의뢰해 ‘평일 전환 6개월 효과’를 분석한 결과 전통시장의 둘째·넷째 주 일·월요일 매출액 증가율은 34.7%로 전체 기간 증가율(32.3%)보다 높았다. 매출이 감소한 곳은 백화점과 대형 쇼핑센터뿐이었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이 서울시 66개 대형마트 주변(반경 1㎞) 상권 의무휴업일과 정상 영업일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에서 대형마트가 쉬는 날 주변 생활 밀접 업종(외식업·서비스업·소매업) 매출액은 대형마트가 영업한 일요일의 매출액보다 1.7% 감소했다. 유동 인구도 0.9% 줄었고 온라인 유통업만 13.3% 증가했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았다고 주변 시장을 가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몰을 이용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