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일대 세운상가 단지가 단계적으로 모두 철거되고 초고층 빌딩과 총 1만 가구 이상의 주거 시설, 4만 평 이상의 도심 공원이 들어선다. 뮤지컬 전용 극장과 같은 문화시설도 마련된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 쪼개졌던 사업 구역은 다시 39개로 통합돼 대규모 개발이 가능해진다. 재생 사업 일환이었던 ‘공중 보행로’는 철거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세훈 서울 시장이 다시 추진하는 세운지구 개발은 낙후된 서울 구도심 재생을 위한 ‘제2의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로 풀이된다.
◇도심 속 14만 ㎡ 규모 녹지 공간 조성=서울시는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에 대해 25일부터 공람 절차를 진행한다고 24일 밝혔다. 서울시는 세운상가군(세운상가~청계상가~대림상가~삼풍상가~호텔PJ~신성상가~진양상가)을 철거하고 일대에 1㎞ 길이, 약 13.9만 ㎡에 달하는 도심 공원을 조성한다.
이를 위해 시는 삼풍상가와 PJ호텔을 ‘공원’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한다. 시는 삼풍상가·PJ호텔 소유주들과 협의 매수를 진행하고 있다. 만약 불발되면 시는 수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두 건물의 감정평가 금액은 각각 약 1000억 원으로 알려졌다.
인현(신성)상가는 중구청 일대 6-4-1구역과 통합 개발해 철거된다. 공공재개발이 진행될 예정으로 시는 해당 구역 외 다른 구역도 통합 개발을 원하는 경우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침이다. 시는 “인현(신성)상가 주민들과 면담한 결과 통합 개발을 희망해 우선 진행하게 됐다”고 전했다. 공공재개발은 소유주 30%가 동의하면 진행할 수 있다. 인현(신성)상가와 6-4-1구역 주민 수는 각각 147명, 188명이다.
나머지 상가군은 모두 존치정비구역(공원용지)으로 지정된다. 존치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추후 재개발 시 공원으로 정비된다. 이들은 주변 개발과 연계해 장기적으로 기부채납을 받아 철거될 예정이다. 시는 일대 상가군 매입에 ‘선투자 후회수’ 방식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 시에서 먼저 매입하고 주변 개발이 시작되면 비용과 이자를 더한 금액을 돌려받는 방식이다. 상가군 철거가 확정되며 박 전임 시장의 세운상가군 재생 사업의 일환이었던 ‘공중 보행로’는 철거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무·주거·상업 공간 대규모 공급…뮤지컬 공연장 등 문화시설도=시는 세운지구를 직장과 주거가 혼합된 공간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변경된 계획안에 따르면 을지로 인근 부지는 현재 최고 높이 90m, 용적률 800%이지만 용도지역 상향을 통해 용적률 1500%, 높이 200m 내외로 개발이 가능해진다. 시는 이를 통해 100만 ㎡ 이상의 신산업 인프라가 공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벤처 창업 공간도 일부 넣는다.
한국 영화산업의 상징적 공간인 충무로 일대를 문화 거점으로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 문화시설 설치도 의무화된다. 시는 우선 삼풍상가 부지 지하에 공공에서 1200석 규모의 대규모 뮤지컬 전용 극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또한 청계천과 도심 공원 일대에는 직주 혼합도시를 실현하기 위해 약 1만 가구의 주거 단지를 조성한다. 시는 주택개발 시 공급주택 수의 10%를 도심형 임대주택으로 확충해 직장인·청년·신혼부부 등에 공급한다.
◇171개로 쪼개졌던 사업장은 39개로 통합=171개로 잘게 쪼개졌던 사업 구역은 총 39개로 통합된다. 시는 2009년 세운상가군을 철거하고 8개 구역으로 통합 개발하는 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했지만 2014년 구역이 다시 잘게 쪼개지며 정비사업이 지지부진해졌다.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24개 구역은 16개 구역으로, 일몰제로 정비구역 해제를 앞둔 147개 구역은 23개 구역으로 통합된다.
시는 지역 영세사업자에 대한 다양한 대책도 세워뒀다. 시는 재개발 시 민간사업자가 영세사업자에 법적인 보상 외에 임시상가 설치, 우선 분양권·임차권 제공 등 세입자 대책을 마련하는 경우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또 기존 영세사업자들이 재정착할 수 있도록 700실 이상의 공공임대상가를 단계적으로 공급한다. 앞서 시는 중구 산림동에 조성된 상생지식산업센터를 통해 58가구의 공공임대상가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기존 소유주나 상가 영세 임차인들 간 반발이 사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삼풍상가의 경우 소유주의 매도 의사가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 개발의 경우에도 상가와 일대 구역이 묶인 만큼 상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30%의 동의율을 확보한 뒤 공공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한편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이 97%에 달하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는 서울 도심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힌다. 4월 인현동 인쇄골목 화재, 9월 세운상가 외벽 탈락 등 노후화로 인한 사고도 잇따르는 상황이다. 공람은 다음 달 8일까지 진행된다. 여장권 서울시 균형발전본부장은 “종묘~퇴계로 일대가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의 핵심 선도사업인 만큼 신속하게 정비사업이 시행될 수 있도록 전폭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정비사업 컨설팅과 함께 도시·건축·조경 등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 자문단을 구성·운영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