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청론직설] “연금 상황 얼마나 심각한지 숨김없는 팩트 보고서부터 내야”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공무원·사학연금 포함…심각 상황 공론화만 해도 성공

국민연금 가입자에 약속한 연금 미적립부채 GDP 80%

연금 줄 돈 日 100년, 加 150년치, 韓은 32년치만 적립

개혁 불발시 ‘연금50% 삭감’ 그리스보다 호된 시련 닥쳐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이 25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약속한 연금 중 1000조 원의 적립 기금을 뺀 미적립 부채가 올해 말 1825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80%를 넘어선다”며 ‘더 내고 늦게 받는’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이 25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약속한 연금 중 1000조 원의 적립 기금을 뺀 미적립 부채가 올해 말 1825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80%를 넘어선다”며 ‘더 내고 늦게 받는’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온 국민연금 개혁이 외려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백화점식으로 24개 시나리오를 담은 연금 개혁 최종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한 데 이어 정부도 구체적인 수치 없이 개혁 방향만 담은 방안을 27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연금 개혁이 불발되면 미래 세대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2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가 국민연금은 물론 공무원·사학연금 등 모든 연금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했는지 숨김없는 팩트 보고서부터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금 개혁이 실패하면 연금의 50%를 삭감당한 그리스보다 더 호된 시련을 외부로부터 강제로 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에 ‘더 받는’ 소득대체율 인상안까지 포함되면서 연금 개혁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5년마다 열리는 재정계산위원회 1차 회의부터 5차까지 모두 참여했지만 위원회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제안한 적이 없었다. 위원들이 보험료 인상에는 공감했지만 소득대체율에는 유지와 상향 조정으로 나뉘어 대립하다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국민연금의 재정 전망이 어느 정도로 나쁜가.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지급을 약속한 예상 연금액이 2023년 말 기준 2825조 원이다. 적립 기금 1000조 원을 뺀 미적립 부채는 1825조 원으로 올해 예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80%를 넘어섰다. 가입자가 2200만 명 정도이니 이미 가입자 1인당 8500만 원의 빚을 진 셈이다. 27년 뒤인 2050년이면 가입자는 1500만 명으로 줄지만 미적립 부채는 5538조 원가량으로 늘어나 1인당 빚이 3억 6000만 원으로 증가한다. 사학연금은 가입자가 33만 명인데 2022년 말 기준 미적립 부채가 176조 원으로 가입자 1인당 5억 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어떤 연금의 재정 상황이 가장 심각한가.

△사학연금이 가장 나쁘고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국민연금 순으로 개혁이 시급하다. 군인연금은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대상자들이 많지 않아 어느 정도 예외를 둬야 한다. 공무원연금은 문제가 심각하지만 일단 국가 지급 보장 조항을 만들어 놨다. 하지만 사학연금은 그런 게 없다.

-결국 사학연금 기금 부족까지 세금으로 메우려 한다는 의미인가.

△입김이 센 병원 노동조합, 법인화로 공무원연금에서 사학연금으로 넘어온 영향력이 큰 서울대 교수들을 믿고 그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제도를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공무원연금처럼 국가 지급 보장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할 수 있어 우려된다.

-모든 연금에 대해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다면 재정이 버틸 수 있나.

△연금 제도를 모두 같이 망가뜨리자는 얘기다. 사학연금을 주려면 보험료를 연금 고갈 추정 시점인 2043년쯤에는 소득 대비 30%까지, 2093년에는 46%까지 올려야 할 판이다. 국민연금 보험료는 소득 대비 35%까지 인상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세금으로 메우고 있는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액도 지난해 4조 4000억 원에서 올해 6조 1000억 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금 개혁을 방치하면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리스는 경제·재정 위기로 외부의 손에 의해 연금 개혁이 이뤄지면서 고액 수급자의 연금이 한순간에 50% 깎였다. 대신 저소득층 연금액은 인상됐다. 우리나라 연금 재정 상황은 그리스보다 더 심각하다. 외부에 의해 개혁되면 더 세게 맞을 수 있다. 일본은 100년 뒤, 캐나다는 150년 뒤에 연금을 줄 돈까지 모아 기금으로 관리하고 있다.

-우리 국민연금은 몇 년 치를 보유하고 있는가.

△우리의 국민연금 기금은 2055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니 32년 치만 가진 셈이다. 국민연금 재정 추계와 보완 대책을 세우는 목표 기간이 일본은 100년, 캐나다는 공식적으로 77년(2100년), 실질적으로 150년이지만 우리는 70년으로 짧은 영향이 크다. 캐나다는 이런 재정 추계 작업을 3년마다 하는데 우리는 5년마다 하고 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이호재기자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이호재기자



-기금의 재정 전망이 악화한 주요 원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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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수명이 늘어나 연금 받는 기간이 증가했으나 경제성장률은 떨어졌다. 연금 급여와 연동된 물가 상승률이 높아지고 출산율이 낮아진 영향도 크다. 보험료율을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낮추되 연금 수령 시점은 늦추는 개혁을 해야 했지만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1998년 9%로 정해진 뒤 25년째 그대로다. 기금 고갈이 다가오는데도 정치권이 개혁을 등한시했다는 지적이 많다.

△주요 선진국 연금 가입자들은 현재 보험료를 우리보다 2배 이상 부담하고 있다. 독일 가입자는 지난 50~60년 동안 보험료를 많게는 우리보다 6배를 더 냈다. 일본 보험료율도 18.3%로 우리의 2배이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70%는 정치적 합의의 어려움을 예상해 자동안전장치까지 도입했다. 출생률·평균수명·경제성장률 등의 지표를 연금 지속 가능성 계수에 넣어보고 연금 제도가 지속 불가능해지면 자동으로 연금이 삭감되도록 한 것이다. 정치권에서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리고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중위 연령(현재 45세)이 높아지고 있어 자동안전장치 도입이 시급하다.

-윤석열 정부의 연금 개혁과 관련해 조언한다면.

△여소야대 구조여서 연금 개혁을 완수하라고 요구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우리 국민연금이 진짜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있는지 가감 없이, 숨김없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팩트(사실) 보고서’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공무원연금·사학연금 등 모든 연금이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공론화만 해도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연금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세 가지가 공개돼야 한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정부 재정계산위원회의 회의록과 미적립 부채, 누적 적자다. 출산율이 매우 낮아졌고 경제 상황도 굉장히 좋지 않다. 연금 개혁의 골든타임은 이미 놓쳤다고 할 수 있다.

-누적 적자는 어떤 개념인가.

△국민연금 기금이 2055년에 고갈되면 끝이 아니라 적자가 계속 늘어난다. 이 누적될 적자를 현재의 가치로 환산한 게 누적 적자이다. 야권 주장처럼 소득대체율을 50%로 10%포인트 올리고 보험료를 9%에서 단계적으로 12%까지 올리면 기금 소진은 2055년에서 2058년으로 3년 늦춰진다. 그러나 2058년 시작돼 2093년까지 누적되는 적자는 현재가로 9100조 원에 달한다. 재정계산위원회의 추정으로는 2093년 GDP 대비 무려 95%이다. 여기에는 사학연금·공무원연금 누적 적자와 기초연금 예산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세금으로 메운다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급격히 치솟을 것이다.

-연금 제도를 소득 비례 연금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우리나라의 평균 소득대체율이 낮은 것은 소득 재분배 기능이 들어가 고소득층 소득대체율이 낮게 나오기 때문이다. ‘더 내고 늦게 받는’ 개혁을 이룬 뒤 자동안전장치 도입과 함께 보험료의 부과 기준이 되는 소득 상한을 현실화시켜야 한다. OECD 회원국 가운데 미국 등을 제외하고는 연금 제도에서 소득 재분배 기능을 유지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

-그러면 연금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지 않은가.

△대신에 기초연금을 보강해야 한다. 새로 들어오는 노인들에 대해서는 소득 하위 70%가 아니라 중위소득 미만자들에게만 주고 저소득 노인들에게 더 많이 주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 절약한 재원으로 국민연금에 20년 이상 성실히 가입한 저소득층에 50%의 소득대체율을 보장해줄 수도 있다. 먹고살 만한 계층은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게 하고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하거나 짧게 가입해 노후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금으로 최소한의 노후 수준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소득 비례 연금과 자동안전장치는 연금 역사가 긴 OECD 등 선진국 연금 제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정년은 60세인데 국민연금 수령 시점이 65세로 늦춰져 퇴직 후 상당 기간 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있다.

△은퇴 시점과 국민연금 수령 시기 사이의 ‘수급 연령 갭’이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초고령사회 계속고용연구회가 이를 개선하기 위해 ‘퇴직 후 재고용’ 정책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퇴직 후 기존 월급의 70% 정도의 보수에 65세까지 재고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일본에도 80%의 퇴직 인력들이 이 제도를 통해 65세까지 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연금 개혁이 어려운 건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들이 자기 기득권을 안 뺏기려고 정보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연금 개혁 관련 조직의 회의록을 공개하고 인터넷 생중계도 검토해볼 만하다. 공무원연금 재정 추계 보고서도 예전처럼 공개해야 한다.

◆He is···

1961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A&M대에서 사회보장제도를 주제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사회보장연구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1~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및 제도발전위원회 위원과 공무원연금 재정계산위원회 위원, 기초노령연금 재정추계위원장, 한국연금학회장 등을 맡았다. 현재 국회 연금개혁특위 자문위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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