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미래 100년을 위한 의료 개혁의 조건

1세기 동안 의료 기술 비약적 발전

낙제점 면치 못하는 필수·지방 의료

정원 확대 및 보상체계 개편이 핵심

野 ‘지역이기주의’ 정치공세 자제를





“남편이 위중한 병에 걸리면 아내는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해 흐르는 피를 남편에게 먹였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 의료 병원인 전주예수병원을 1912년에 설립한 마티 잉골드 여사의 일기 중 일부다. 과거 우리나라의 의료 수준은 이처럼 처참했다. 11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 의료 체계와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한국에서 간이식 수술을 받으려는 미국 환자들의 한국행(行)이 잇따를 정도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체감하는 의료 수준은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사망하거나 고열에 시달리던 아이가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일 등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 체계 붕괴의 원인으로 의료 수요에 비해 필수 분야 의사들이 턱없이 부족한 현상이 지목된다. 의대 정원은 2006년 3058명으로 줄어든 후 18년째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인구 1000명당 국내 의사 수는 2021년 기준 2.6명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7명)의 3분의 2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공의들이 이른바 돈이 되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에 몰리는 반면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를 외면하는 것도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더 큰 문제는 급격한 고령화 현상으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가 의사 부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의사 양성 확대에 팔을 걷어붙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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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의대 정원 확대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면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안에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 의대 설립안 등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의 호남 지역 일부 의원들은 느닷없이 전남 국립 의대 신설을 요구하며 삭발식도 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편승해 자신들의 정치적 텃밭에 의대를 신설하기 위한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정부와 대한의사협회 간 대화와 협상을 방해하고 국론 분열을 부추길 수 있는 정치 공세이기도 하다.

민주당의 이 같은 주장은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추진하다 실패한 의료 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1년에 400명씩 10년간 의대 정원을 4000명 증원하고 졸업 이후 10년간 지역 근무를 전제로 한 공공의대 설립 등을 골자로 하는 의사 인력 확충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의협의 집단 반발에 막혀 개혁은 물 건너갔다.

지방·필수 의료 인력 확충을 위한 현실적인 해법은 과감한 의대 정원 확대에서 시작돼야 한다. 한 해에 최소 1000명씩 10년 동안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이마저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당장 내년에 의대 정원을 1000명 증원해도 의사 교육에 10년의 기간이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2034년에야 비로소 1000명의 의사가 추가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또 추가 배출 의사 규모는 2043년에 이르러서야 1만 명에 달한다. 현재 전국의 의사 인력이 12만 5000여 명인 만큼 의사 정원 확대 이후 20년이 지나야 전국 의사 규모가 현재보다 8% 증가하게 된다. 2035년에 2만 7232명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망을 감안하면 의사 증원 폭이 너무 적다.

정부는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국민 생명권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과감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펼쳐야 한다. 또 의사들에 대한 보상 체계 개편도 병행해야 한다. 고난도 수술과 야간·휴일 당직 등에 대한 충분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전공의들을 필수의료 분야로 유인할 수 있다.

아울러 고령화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해 건강보험료 현실화도 검토해야 한다. 노인층 인구가 증가할수록 건보 재정 악화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7년 만에 동결된 건강보험료율(7.08%)을 단계적으로 법정 상한인 8%로 올리는 작업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명시된 보험료율 상한 폐지 등에 대한 검토 역시 시작해야 할 때다.

의료계는 기득권 지키기를 위해 ‘묻지 마식 반대’만 하지 말고 국민들의 건강권을 중심에 놓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의료계가 또다시 집단 휴진 등으로 제 밥그릇만 지키려 한다면 국민들의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당도 정부와 의료계의 틈을 파고들어 지역이기주의를 앞세우는 정치 공세를 자제해야 한다. 그래야만 미래 100년을 위한 의료 개혁에 착수할 수 있다.

김상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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