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규모 지상공격을 가하면서 북부 일부 지역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의 전면전에 돌입한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이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섰다”며 “길고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사흘째 지상군 투입을 이어가며 포위 전략으로 하마스 세력의 숨통을 조여가는 가운데 이란은 “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맞대응을 경고했다.
이, 지상전 돌입 알리는 신호
29일(현지시간)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지상작전 확대를 개시한지 사흘째가 됐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전날 네타냐후 총리는 텔아비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 번째 단계의 목표는 분명하다”며 “하마스의 통치와 군사력을 파괴하고 인질들을 데려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이제 시작점에 서 있다”며 “지상과 지하에서 적을 파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에도 날을 세웠다. 그는 “이란의 지원 없이는 하마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란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서방을 적대시하는 ‘악의 축’”이라고 비판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네타냐후 총리가 침공을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지상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를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이스라엘군(IDF) 대변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가자지구에서 지상 활동과 병력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 이스라엘의 교전 양상은 애초 관측됐던 기갑·보병부대를 대거 투입하는 방식의 전면전과는 거리가 있다. IDF 정보국장을 지낸 아모스 야들린은 “인치, 미터 단위”로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고, 영국 BBC 방송의 제러미 보웬 기자 역시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역을 한조각 한조각씩 치우고 있는 듯하다”는 해석을 내놨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IDF가 이같은 방법으로 가자지구 북부 일부를 장악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전날 하마스의 공중전 책임자인 아셈 아부 라카바를 제거했다고 발표했으며 밤새 가자지구 북부의 지하 표적 150곳과 레바논에 있는 헤즈볼라 군사 시설을 공습했다고 밝혔다.
단계별 전진방식 취할 듯
이스라엘이 전면 침공 방식을 택하지 않은 데는 미국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지상전 계획을 접한 미국 측은 충분한 채비가 돼 있지 않다고 판단해 지상전 진행 방식을 단계별 확대로 바꿀 것을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상 작전 확대 이후 이날 처음으로 이스라엘 장교와 병사 총 2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져 자국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제한적 작전 확대로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IDF의 전략을 ‘포위 전술’이라고 지칭하며 인질과 민간인 희생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를 고려한 결과라고 짚었다. 지난 27일 IDF가 진입한 두 지점이 가자시티 북쪽과 남쪽에 있다는 점에서 가자시티를 포위하기 위한 점진적 계획이라는 진단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하마스는 미로 같은 터널 안에 연료와 식량 등 필수품을 비축하고 있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바닥날 것”이라며 “발전기를 돌릴 연료가 부족하면 지하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거나 조명을 밝힐 수 없게 되고 하마스는 외부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IDF의 작전이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걸릴 것이라는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의 말을 전했다.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는 3주∼6주 정도의 지상 침공을 생각하며 이같은 장기전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모두를 행동하게 할 것” 경고
확전 우려는 날로 고조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7일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란과 연계된 단체의 미군을 겨냥한 공격에 맞서 “추가 조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역설했다. 앞서 미군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연계된 시리아 동부 지역 시설 2곳을 공습했다. 이날 미 국무부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충돌이 격화하는 레바논에 있는 자국민에게 철수령을 내렸고 독일은 확전 우려에 중동에 1000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했다.
이에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29일 “시오니스트(유대민족주의) 정권의 범죄가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이것이 모두를 행동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들은 이스라엘에 전방위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한편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대통령이 25일 가자지구 측이 발표하는 팔레스타인 사망자 숫자를 신뢰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점에 대해 아랍계와 무슬림 단체들이 격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은 26일 무슬림 사회 지도자들을 만나며 아랍계와의 관계 회복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무슬림과 아랍계 표가 민주당에서 이탈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이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 무슬림 단체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가 2020년 대선 당시 실시한 출구조사에서 무슬림의 약 69%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