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나눠먹기식’ 국가연구개발(R&D) 예산을 바로잡겠다며 대규모 예산 삭감에 나선 것을 두고 정부 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예측 가능성을 떨어트릴 뿐 아니라 6개월 만에 정부가 말을 바꿔 정책 조율도 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또 기존 투자 성과가 사라지는 ‘매몰 비용’까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29일 국회예산정책처는 ‘2024년도 예산안 분석’ 자료에서 “2024년 R&D 분야 예산안은 과거의 점진적 증가 추세와 달리 급격히 감소해 연구 현장의 예측 가능성을 저해하고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면서 R&D 예산을 올해 31조 778억 원에서 내년 25조 9152억 원으로 16.6% 감액했다.
대규모 R&D 예산 조정이 민간 기업의 관련 투자 축소로 이어질 우려도 있는 만큼 적절성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예정처의 시각이다. 정부가 9월 국회에 제출한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R&D 분야의 재정지출은 5년간 연평균 0.4% 증가한다. 예정처는 이를 두고 최근 4년간 연평균 10.8%씩 공격적으로 확대 발표한 계획과 일관성이 떨어질 뿐더러 세부 부문별 재정지출계획도 수립하지 않아 구체성도 결여돼 있다고 혹평했다. 아울러 예정처는 올해 초 발표한 ‘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투자전략(2023~2027년)’이 목표와 정합성도 부족하다고 봤다. 실제 3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에서 2027년까지 5년간 17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뒤 6개월 만에 145조 7000억 원으로 축소시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재부 간 정책 조율 문제도 드러냈다.
예정처는 과기부가 과학기술기본법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과기부는 법정 기한(6월 30일)보다 두 달 늦은 8월 22일에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를 열고 R&D 예산 배분·조정을 확정해 기재부에 통보했다. 예정처는 “건정 재정 기조하에 예산안 구조 조정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더라도 법률에 정해진 기한을 넘겨 제출된 안건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평가·통보했다. 최근 10년간 법정 기한을 지키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예정처는 매몰 비용을 우려했다. 예정처에 따르면 전년 대비 50% 이상 감액된 R&D 사업이 전체의 39.1%에 달했다. 예정처는 이들 사업이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대부분 폐지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예정처는 “투자 비용뿐 아니라 예산 지원으로 개발되거나 이미 구축된 장비와 연구 인프라까지도 사장될 수 있어 활용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