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31일 윤석열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657조 원 규모의 2024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에 본격 돌입한다. 통상 총선을 앞두고 열리는 예산안 심사는 ‘지역구 챙기기’라는 여야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예년에 비해 순조롭게 진행돼 왔지만 이번에는 주요 예산을 둘러싸고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난항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이후 다음 달 1일 공청회를 연 뒤 3일부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정부 부처를 상대로 엿새간의 정책 질의를 진행한다. 세부적인 심사는 다음 달 13일부터 진행되는 소위원회에서 이뤄진다. 여야 예결위 간사를 비롯한 예결소위 위원들과 기획재정부 차관 및 각 부처 관계자들이 모여 예산의 증감액을 놓고 기싸움을 펼친다.
정부 여당은 내년도 예산안이 재정 건전화와 민생·약자 복지 정책을 위해 꼭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원안 통과를 요구한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각 상임위 심사 단계부터 (야당 공세에) 철저히 대응해 주시고 예결위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국민들께 제대로 설명하고 법정 기간 내에 예산이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예산 심사에 앞서 국제통화기금(IMF)도 경고한 가계부채 위기, 북한보다 낮은 무역수지 등 ‘윤석열표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래 먹거리’인 연구개발(R&D) 예산 복원도 강조한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사상 초유의 듣도 보도 경험하지 못한 예산안을 정부가 제출했기 때문에 훨씬 더 꼼꼼하게 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쟁점 법안 처리까지 겹치면서 여야 간 극한 대치 또한 예상된다. 민주당이 다음 달 9일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과 이른바 ‘방송3법’의 강행 처리 의지를 밝힌 가운데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카드로 맞불을 놓을 계획이다. 자칫 법안 심사를 둘러싼 갈등의 불똥이 예산 심사로도 튈 수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대통령실 또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보통 기존안을 지켜야 하는 정부는 심사 과정에서 ‘을(乙)’의 입장에 놓이지만 지난해에는 대통령실이 여야의 합의안을 파기하는 등 예산 심사 과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며 새해를 일주일가량 앞둔 12월 24일에야 예산안이 통과됐다. 이 때문에 올해도 헌법상 처리 시한(12월 2일)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정기국회 내 통과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