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보험

납입금 못내 강제 해지당한 것만 1조…보험 담보 70조 대출도

[보험 깨는 서민들]

◆ 8월까지 환급금 32조 달해

보험약관대출 1년새 1.4조 ↑

고금리에 예·적금 갈아타기 늘어

상반기 유지율 전년比 7%P 하락

보험사 유동성 확보 부담 커져

계약자도 안전망 사라져 불안





# A 씨는 20년 전 남편과 함께 월 15만 원씩 납입하는 생명보험사 종신보험에 가입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금리가 부쩍 올라 매달 내는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최근 해약을 고민해 왔다. 지금 해약해서 받는 약 7000만 원으로 대출금을 상환하면 빡빡한 살림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여러 보험상담사들에게 문의한 결과 1년 정도면 납입 기간이 끝나는 만큼 유지하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A 씨는 매달 200만여 원씩 이자를 내며 쪼달리느니 빚을 일부라도 갚고 이자를 줄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결국 해약을 선택했다.

# 2010년 생명보험사의 30년 만기 저축보험에 가입해 현재까지 4100만 원 정도를 납입한 B 씨. 최근 보험사에 문의하니 지금 해약하면 환급금으로 42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가입 후 10년이 지났지만 겨우 원금을 건지는 셈이다. 만기를 채우면 환급률이 165%여서 만기까지 가져갈까 생각했지만 최근 은행권에서 두 자릿수 금리의 적금까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니 보험 유지가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 들어 보험 해지가 급증하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이자 내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물가마저 치솟아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더욱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험사가 올해 8월까지 중도 해지한 가입자들에게 지급한 해약 환급금은 32조 원을 육박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조 원 가까이 급증한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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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보험 해지가 늘어나는 것은 가입자가 긴급하게 자금을 필요로 하거나 금리가 오르면서 보험보다 좋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품들이 있을 때, 또는 물가가 급등해 보험에 자금을 넣어두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때 등으로 나뉜다. 대개는 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올해는 특히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가입자의 긴급 자금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험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보험 해지 이전 가입자들이 목돈을 필요로 할 때 많이 찾는 보험약관대출도 올 들어 크게 늘었다. 2일 금융감독원 금융 통계 정보 시스템 및 보험 업계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국내 생명·손해보험사 보험계약대출 잔액은 69조 4000억 원 정도인데 지난해 말보다 1조 4000억 원 급증했다. 약관대출은 보험계약을 담보로 보험 환급금의 70~80% 정도를 빌려주는 상품인데 은행의 예·적금담보대출과 비슷하다. 자신의 보험금을 담보로 빌리는 것이어서 금리는 시중 금융기관의 신용대출보다는 낮고 별도의 대출 심사가 필요 없다. 만기도 정해져 있지 않아 보험 가입자가 급하게 목돈이 필요할 경우 이용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약관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보험 해약까지 급증한 것은 결국 보험 가입자들이 돈을 융통할 수 있는 창구가 좁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이전에 가입했던 보험 상품보다 더 나은 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으로 돈을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 때문에 보럼 유지율도 하락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생명보험사의 25회차 보험계약 유지율은 각각 63.1%로 지난해 상반기(70.3%)보다 7%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아울러 효력 상실로 인한 해약률(연초부터 해당 월까지 누적 기준)은 올해 8월 5.7%로 올해 1월(1.2%)보다 5배가량 늘었다.

보험 업계에서는 보험 해지가 늘어나게 되면 결국 보험사와 계약자 모두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올해 6월 말 기준 국내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K-ICS)은 223.6%로 전 분기(218.9%)보다 소폭 개선되면서 당장 해지 환급금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위기를 겪을 보험사는 적다. 하지만 지난해와 같은 채권시장 불안 등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해지 환급금 증가는 보험사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실장은 “해지 환급금은 현금으로 지급되지만 보험사는 현금만 유동성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당장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보험사에 부담이 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계약자 입장에서도 보험 해지는 뜻하지 않은 사고 등에 대비하기 위해 꾸준히 구축했놨던 ‘안전망’이 사라지는 만큼 이후 삶의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석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험은 개인 차원에서 마련해 놓는 미래를 위한 대비”라며 “결국 보험 해지는 사회 안전망의 한 부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박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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