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이 최근 국회에서 열린 ‘기업 생존을 위한 상속세제 개편 세미나’에서 “국내 상속세가 너무 가혹해 유능한 기업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 회장은 가까운 기업인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뇌경색으로 쓰러졌다가 회복한 그 기업인이 외국으로 이민을 간다고 했다”며 “병상에서 상속세 상담을 받아보니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도한 상속세는 창업자가 만들어온 기업의 정신과 책임을 지킬 수 없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현행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일본(55%)에 이어 2위다. 하지만 최대 주주 보유 주식 상속 시 적용되는 할증을 더하면 60%로 세계 최고다. OECD 평균인 14.5%의 4배 수준이다. ‘가장 가혹한 징벌세’라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과도한 상속세는 가업 승계를 통한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어렵게 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경영인들 사이에 “한두 번 상속세를 내면 모든 기업이 국영기업이 될 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막대한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었던 고(故) 김정주 넥슨그룹 창업주의 유족이 넥슨 지주회사(NXC) 주식으로 현물 납세하자 정부가 NXC의 2대 주주가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알짜 기업이었던 락앤락·쓰리세븐 등은 상속세 부담에 아예 회사를 외국 사모펀드 등에 넘겼다.
징벌적 상속세는 기업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세계적 추세와도 역행한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상속세를 폐지한 나라는 캐나다·호주·스웨덴·노르웨이 등 14개국이나 된다. 상속세가 있더라도 스위스(7%), 이탈리아(4%) 등 세율이 높지 않은 나라가 많다. 영국도 2025년까지 상속세 단계적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2000년 세법 개정 이후 23년간 그대로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세계적 흐름과도 맞지 않는 상속세 제도 전반을 서둘러 수술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