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역 및 필수의료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드라이브를 거는 가운데 현직 의사 10명 중 8명이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6일 서울특별시의사회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7972명 중 6125명(77%)이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떠나 '의대 정원 확대에 원천적으로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서울시의사회가 전 회원을 대상으로 10월 20일∼10월 27일까지 8일간 실시한 이번 조사에는 인턴·레지던트를 합쳐 전공의 848명과 봉직의(의원이나 병원에 소속되어 근무하면서 월급을 받는 의사) 1715명, 개원의 2303명, 교수 2935명 등 다양한 직군이 참여했다. 정부가 수가 인상, 의료소송 부담 해소 등 필수의료 관련 의료계가 요구하는 대책 등이 선결된 후에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조건을 달았음에도 10명 중 8명 꼴로 의대 정원을 늘려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박명하 서울특별시의사회장은 "정부가 내세운 필수의료 대책이 선결과제로 이행됐을 때 의대 증원을 찬성하느냐는 질문을 했음에도 무려 77%의 의사가 원천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놨다"며 "의대 정원을 무작정 늘리는 것만이 해법이 아니라는 걸 반증하는 결과"라고 말했다.
직역별로 살펴보면 '필수의료 대책 조건을 선결 과제로 두더라도 의대 증원을 반대한다'는 의견은 △인턴·레지던트 92% △기타 81% △봉직의 84% △개원의 75% △교수 70% 순이었다. 소위 '젊은 의사'들의 거부감이 더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복수 응답)로는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의료의 해결책이 안 된다'는 응답이 95%로 가장 많았다. '의사 과잉 공급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 및 국민 건강 피해'가 56%, '이공계 학생 이탈로 인한 과학·산업계 위축에 대한 우려'가 48%로 뒤를 이었다.
반면 의대 정원 확대를 조건부 찬성한 의사 1847명은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리는 게 좋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가장 많은 35%가 '100~300명'을 선택했다. '300~500명'이라는 응답이 31%였고 △100명 이하가 12% △500~1000명이 11% △1000명 이상이 8% 순으로 조사됐다.
당초 의료계에서는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줄였던 의대 입학정원인 351명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비슷한 규모에 대한 합의점이 모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이날 의대 정원 논의를 의료현안협의체가 아닌, 새로운 협의체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정부는 올초부터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실무자 중심으로 이뤄진 의료현안협의체와 의대 정원 문제를 논의해오던 중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추가 논의 대상으로 올렸다. 관련 논의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데다 의대 정원 논의를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의사단체하고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여론이 제기되면서다. 보정심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필두로 정부위원, 의사협회장, 시민단체, 건강보험공단 등이 참여한다.
다만 의료계에서는 보정심 산하에 있는 필수의료 전문위원회와 의사 인력 전문위원회에 의사단체 추천 위원이 없다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앞서 의협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도 지난 3일 이필수 의협 회장 등 집행부에 의료현안협의체 위원을 전면 개편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부가 의료현안협의체 차원에서 의대 정원 문제를 논의하길 거부한다면 새로운 의정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