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꽃과 함께 식사

주용일





며칠 전 물가를 지나다가



좀 이르게 핀 쑥부쟁이 한 가지

죄스럽게 꺾어왔다

그 여자를 꺾은 손길처럼

외로움 때문에 내 손이 또 죄를 졌다

홀로 사는 식탁에 꽂아놓고

날마다 꽃과 함께 식사를 한다



안 피었던 꽃이 조금씩 피어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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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컵 속 물이 줄어드는

꽃들의 식사는 투명하다

둥글고 노란 꽃판도

보라색 꽃이파리도 맑아서 눈부시다

꽃이 식탁에 앉고서부터

나의 식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외로움으로 날카로워진 송곳니를

함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슬픈 전설의 손목을 꺾어오셨군요. 쑥 캐던 불쟁이의 딸, 함께 살자 약속했던 사내에게 버림받았던 그 여인을 데려오셨군요. 한평생 약초 캐며 홀로 살다가 절벽에서 떨어졌던 여인을 구해오셨군요. 수정궁 같은 유리컵에 모셔놓고 손수 밥상을 차려 주셨군요. 앞섶이 젖을세라 손끝 하나 놀리지 못하게 하셨군요. 설거지도 빨래도 하던 대로 도맡아 하셨겠군요. 꽃 눈썹 하나둘 지다가 잎마저 시들면, 꽃 한 가지의 장례를 홀로 치르시겠군요.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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