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등 금융기관의 부실이 발생했을 때 금융 당국이 주주를 비롯한 이해 관계자 간 조정을 거치지 않고 신속하게 매각 절차를 밟을 수 있는 ‘특별정리제도’가 도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때처럼 특정 은행의 부실이 금융권 전체로 전이되는 것을 조기에 막기 위한 조치다.
14일 예금보험공사와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에 따르면 예보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24~2028년 중장기 경영 목표’를 지난달 정부에 제출했다. 예보는 경영 목표에 특별정리제도를 내년 중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담았다. 특별정리제도는 특정 은행에 부실이 생겨 금융 당국이 정리 절차를 진행할 때 은행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매각이나 이전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부실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한 일종의 ‘패스트트랙’으로 볼 수 있다. 현행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당국은 매각이나 이전 조치에 앞서 은행이 마련한 시정 계획안을 제출받는 등 사전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실제 정리 절차가 시작되기까지 시일이 많이 소요돼 사태 수습이 지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예보가 특별정리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금융기관 한 곳의 부실이 전체 금융권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실제 올 3월 SVB가 파산하자 미국 지역 은행권을 중심으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우려가 고조된 바 있다. 이후 국내에서는 저축은행 등 일부 금융기관에서 부실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문제 금융기관을 조기에 정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예보는 이에 올 상반기부터 금융위원회와 특별정리제도 도입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해왔다. 예보는 “금융위, 민간 전문가와 함께 제도 개선 논의를 거친 뒤 법제화를 추진할 계획”이라면서 “유럽연합(EU)이나 영국 등 특별정리제도를 앞서 도입한 주요 국가들과 협의해 제도를 보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