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그저 머리가 짧았을 뿐인데

최성규 디지털편집부 차장대우


‘한국 남성이 점원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 폭행하다’ (BBC방송 기사 제목)

또다시 여성 혐오다.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편의점 여성 아르바이트생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범행 당시 이 남성은 “머리가 짧은 것을 보니 페미니스트”라며 “페미니스트는 좀 맞아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 공영 BBC방송은 이 사건을 두고 한국에 대해 “경제 선진국 가운데 성평등 정도가 낮아 여성 직장인에게 최악의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면서 “역차별로 피해를 입고 있다고 느끼는 젊은 남성들로 인해 안티페미니스트가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여성들은 “머리가 짧아서, 페미니스트라서 혹은 그 어떤 이유로든 여성이 폭행당해서는 안 된다”며 분노한다. 온라인에는 ‘#여성·숏컷·캠페인’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자신의 짧은 머리 사진을 올리는 ‘숏컷(쇼트커트) 챌린지’가 이어진다.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숏컷 챌린지’는 이전에도 있었다. 2021년 도쿄 올림픽 당시 양궁 국가대표인 안산 선수의 짧은 머리를 놓고 일부 남성들이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면서 집중 공격했다. 이에 “안산 선수를 보호하자”는 움직임이 ‘숏컷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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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 혹은 젠더 갈등은 우리 사회의 현안 중 가장 민감한 사안으로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2016년 5월 서울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한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 젠더 갈등 이슈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정치권은 수수방관이다. 되레 남녀 간 갈라치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선거철 단골 공약으로 내놓는 ‘군 가산점’이나 ‘여성 징병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치권이 표를 얻기 위해 젠더 갈등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은 ‘청년젠더공감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정치권에서 젠더 갈등을 키우고 자신들의 정치적 자원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시점이 됐다”고 지적했다.

더 이상 젠더 갈등을 방치해서는 안 될 상황에 이르렀다. 온라인상 의견 표출을 넘어 살인과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병폐인 지역 갈등처럼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나친 갈등과 대립은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일이 터졌을 때마다 내놓는 땜질식 처방이 아닌 좀 더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때다.






최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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