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독] 이정식 고용부 장관 "노란봉투법, 바지사장만 늘려…이번주 거부권 건의 여부 결정"

[서경이 만난 사람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대담=양종곤 사회부 차장

교섭대상 '진짜 원청' 찾는 과정서 법적분쟁 등 산업현장 혼란 우려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노란봉투법 아닌 원·하청 상생서 찾아야

'사회적 대화' 위기때마다 중요역할…한국노총 경사노위 복귀 고무적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7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성형주 기자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7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성형주 기자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요청할지 여부를 이번 주 결정하겠습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7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노동조합법 2·3조를 바꿔서 (노동계) 주장대로 될 수 있는지는 우리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노란봉투법이 9일 국회 문턱을 넘어서기는 했으나 앞으로 미칠 여파를 가늠하기 어려운 만큼 사회적 논의·합의가 더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기간 동안 노동계에 몸담고 있는 그이지만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 장관이 노란봉투법에 대해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배경에는 그가 걸어온 길이 자리하고 있다. 이 장관은 강경 노선, 이념 선명성으로 대표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정책 실리를 추구하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두 갈래로 이끌어온 노조 역사에서 손꼽히는 노동운동가다. 양대 축 가운데 한 곳인 한국노총에서 30여 년 동안 ‘정책통’으로 일해왔으나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는 다소 말을 아꼈다. 해당 법률 개정이 이른바 ‘쓰나미’급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평소 이 장관이 노동 문제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장관은 “역사적 경험에서 보면 일방적인 입장만 반영한 노동조합법 개정은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왔다”며 “(노란봉투법의 의도와 달리) 노사 갈등이 발생하고 산업 현장에서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란봉투법의 골자 가운데 하나는 하청 근로자가 임금 등 교섭을 할 수 있는 사용자 개념을 확대했다는 것이다. 현재 원청 사측은 하청 근로자와 교섭 의무가 없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이 현실화되면 하청 근로자가 원청인 회사 측을 교섭 테이블에 앉힐 수 있다. 다만 법률상 개념이 ‘실질적 사용자’로 불분명해 교섭 과정은 물론 이에 따른 법적 분쟁에서도 혼란이 불가피하다. 교섭에 나설 이른바 ‘진짜 사장 찾기’로 노사 양측이 모두 혼돈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이 ‘열악한 근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란봉투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함의를 이해하면서도 선뜻 동조할 수 없는 이유다. 노란봉투법 개정을 두고 노동·경영계는 극한 대치 중이다. 노조 시민단체들은 △실질적 사용자 등 교섭 대상 확대 △노조의 파업 등 쟁의 대상 확대 △노조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제한 등이 작용해야 헌법에서 정한 단결·단체교섭·단체행동 등 노동 3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된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즉각 공포를 외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심각한 혼란만 우려된다며 노란봉투법 폐기 수순인 거부권 행사를 윤 대통령에게 요청하고 있다. 정부는 법과 제도 변화에 따른 국민 혼란·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경영계와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노사는 물론 이를 둘러싼 법과 제도에 모두 충돌할 ‘럭비공과 같은 법’이라는 이유에서다.

이 장관은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에 대한 모호한 개념으로 근로 관계가 없는 사업주에게 단체교섭 의무만 부여하고 있다”며 “원청 사업주는 어떤 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노동계가 노란봉투법에서 원하는 대로 원청이 ‘진짜 사장’이라고 인정하는 게 아니라 ‘하청 고용 근로자와 왜 교섭하느냐’는 반발과 혼란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쟁의행위 범위 확대와 손배책임 제한에 대해서도 “법은 법원에서 정당한 해고라고 판단했더라도 노조가 이 해고자의 복직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돌입할 수 있게 한다”며 “기업은 불법 쟁의행위가 일어나면 개인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를 입증해야 하는 법이다. 입증을 못하면 기업은 재산상 손해를 입어도 보상받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이어 “노란봉투법은 우리 현실과 달라 다른 법과 제도들과 정합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며 “(노란봉투법이)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할지에 대해서는 확답하지 않았다. 건의할지에 대해 이번 주 결정한다는 뜻이지 방향성을 정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현재 노동계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이 28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 행사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7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성형주 기자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7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성형주 기자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현 정부는 물론 이 장관이 노동 개혁의 목표로 꼽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다만 노란봉투법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할 해법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상생을 해묵은 과제의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중구조는 원·하청, 기업 규모, 고용 형태, 노조 유무로 나뉜 우리 노동시장의 폐해다. 대기업(원청)은 원·하청 관계를 구축해 비용 절감을 해왔다. 하청은 원청보다 이윤이 작고 경영 상황도 나빠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임금 수준은 늘 원청보다 낮다. 대기업 정규직 임금이 100이라면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40~50에 그치는 등 양극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 장관은 “이중구조는 현대판 반상(班常·양반과 평민)의 차별이라고까지 불린다”며 “미래 세대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해법을 찾아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협력 업체(하청)들이 휘청이면 대기업(원청)들도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이들이 운명 공동체란 인식이 부족하다”며 “이중구조는 의식과 관행, 제도가 종합적으로 개선돼 상생과 연대의 산업·노동 생태계를 만들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원청)·정규직 노조가 중소기업(하청)·하청 근로자에 이윤(임금)을 스스로 나누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길을 터주는 것이다. 실제로 고용부는 올 2월 조선업, 9월 석유화학 산업 등 업종마다 노사와 원·하청 상생틀(상생협의체) 만들기에 속도를 내고 지원을 약속해왔다. 연초 구성한 상생임금위원회도 임금 체계, 노동시장 약자 보호 방안, 공정거래 등 종합적인 양극화 해소 방안을 곧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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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오른쪽) 고용부 장관이 지난해 4월 28일 서울 보라매공원에 있는 산업재해 희생자 위령탑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사진 제공=고용부이정식(오른쪽) 고용부 장관이 지난해 4월 28일 서울 보라매공원에 있는 산업재해 희생자 위령탑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사진 제공=고용부


안전한 일터 만들기는 이 장관이 취임 초기부터 집중해 온 과제다. 이는 그가 지난해 취임 직후 첫 행보로 산업재해 희생자 위령탑을 참배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다. 산재 사망 사고 시 사업주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노사의 또 다른 대립 지점으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해당 법률에 따르면 내년 1월 27일부터 5~49인 근로자 사업장(공사 금액 50억 원 미만 건설 현장 포함)으로 확대 시행된다. 경영계는 소규모 기업들의 준비 기간이 더 필요하다며 시행 유예를 주장하고 노동계는 사망 산재를 줄이기 위해 처벌 강화 요구로 맞서고 있다.

이 장관은 “근로자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며 안전한 일터 만들기를 자신과 고용부,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장관은 중대재해법 위반 수사를 담당하는 동시에 행정 능력으로 중대재해 감축 역할을 해야 할 고용부가 내년 법 확대 시행 후 상황에 잘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현행대로 법이 확대 시행되면 새로운 법 적용 사업장은 약 83만 곳까지 늘어난다.

이 장관은 “현재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장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개선이 아니라) 서류 작업에 집중한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인데 이 때문에 법 위반 수사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며 “사망 산재의 약 60%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난다. (법이 예정대로 시행되면) 사고는 늘고 이에 따라 고용부 수사가 길어지고 이 재판의 불확실성도 커지는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이 장관은 여당이 발의한 중대재해법 시행 2년 유예안의 국회 논의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돕겠다는 입장이다. 또 법 시행에 맞춰 시설 개선, 무료 컨설팅 등 다양한 사업장 지원을 강화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마주 달리는 열차처럼 보였던 노정 갈등은 최근 노정 대화 창구 복원이라는 전기를 맞았다. 제1 노총인 한국노총이 전격적으로 5개월 만에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복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한국노총을 노동계 대표 단체로서 대화 파트너로 인정했다. 고용부가 근로시간 개편안도 노사정 대화로 만들겠다는 입장을 정한 게 주효했다. 민주노총은 물론 한국노총도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 기조는 유지한다. 하지만 노사정 대화 테이블에서 정부의 노동 개혁안과 노동계와 경영계의 정책 요구안이 논의되면서 어떤 결론이든 정당성과 대안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노총은 산업 전환, 정년 연장,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을 우선 논의 안건으로 고려하고 있다. 정부와 경영계안은 이르면 다음 달 초 열릴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서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노사정 대화는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노사정 간 선언뿐만 아니라 큰 틀의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이 장관은 “한국노총과 사회적 대화는 1997년 외환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처럼 국민적 위기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어떤 정부든 정책의 절차적 정당성과 내용의 타당성을 얻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추구해 왔다”고 사회적 대화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He is...

△1961년 충북 제천 △대전고 △서울대 경제학과 △1986~2020년 한국노총 기획조정국장·정책연구실 연구위원 △2004~2006년 건설교통부 장관정책보좌관 △2007~2010년 고용부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 △2014~2017년 한국노총 사무처장 △2017~2020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2022년 고용부 장관

세종=양종곤 기자 사진=성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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