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간의 정상회담이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많은 전문가는 군사대화 재개 외에는 별 내용이 없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발표문의 행간과 정황상 50여년의 미중관계를 지배해온 1972년 상하이코뮤니케 2탄의 서곡을 연상하게 한다고 본다. 회담장인 샌프란스시코 피롤리정원과 상하이 진장호텔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어쩌면 미국이 중국의 실체를 인정해 미중관계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첫 단추를 끼웠을지도 모른다.
시대적 상황은 달라졌다. 1970년대 초는 과학기술과 군사력을 앞세운 구소련의 공산주의 패권주의에 대항해야 했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지금도 주인공은 미국이다. 미국은 중국을 유일한 도전세력으로 명시하고 있다. 중국은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의 최대 수혜자다. 2008년 발발한 세계금융위기의 반사이득을 톡톡히 봤다. 총량경제규모에서 미국의 80%까지 팽창했다. 시 주석이 회담에서 “지구는 미중 양국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고 발언한 배경이다.
미국은 세계금융위기 수습에 한숨을 돌리자마자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압박은 미국우선주의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가속화됐다. 그렇다고 러시아에 손을 내밀기는 쉽지 않다. 결국 중국 손절이라는 디커플링 정책이었다. 화웨이 제재, 민감품목 수출금지, 징벌적 관세부과등 극심한 무역제재가 시작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 술 더 떴다. 하지만 대중국 경제 의존은 시정되지 않았다. 이는 미국만의 호경기 속에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하에서의 불황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금기시되던 산업정책이라는 극약을 ‘안보’라는 명분으로 처방했다. 동맹국 기업들도 불러 모은 결과다. 일시적인 호경기일수도 있다. 대신 시장경제질서 구축이라는 명분은 사라졌다. 중국과의 단절은 제 발등을 찍는 정책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을 수도 있다.
시 주석의 3기가 시작되면서 디리스킹(위험관리)정책으로 바뀌고 있다. 세계화 물결도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코로나 봉쇄가 해제되자마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지역 전화 속에서도 전세계 인구는 물밀듯이 유동하고 있다. 시 주석의 야심작으로 11월초 열린 상하이세계수입박람회에 미국은 처음으로 미국관을 개설하면서 200개가 넘는 대표적 기업들이 참가했다. 격렬한 미중 갈등 속에서도 세계 500대 다국적기업 가운데 300여개 이상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영국·독일·프랑스 등의 유럽 기업들도 정치·안보 영역과는 달리,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자국발전에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이 구매력 실체가 있는 최대시장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동맹체제로 문단속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회의 개최를 계기로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시키기로 결심한 것은 아닐까. 중국군사위원회 부주석이 러시아를 찾고, 미국 국방장관도 동남아를 찾는 등 복잡한 행보를 하고 있기는 하다. 반도체등 민감한 분야의 제재를 지속하는 것으로 했다. 회담 직후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을 독재자라고 부르며 돌변하기도 했다. 어쩌면 대선 전략의 하나로 밋밋한 바이든 대통령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한 전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 배려 흔적은 역력하다. 세계가 주목하는 APEC회담 직전이라는 타이밍, 화교의 미국내 최초 정착지로 디지털 대전환의 상징인 실리콘밸리 소재지가 샌프란시스코다. 특히 피롤리정원 이름이 의미심장하다. 싸움(fight)·사랑(love)·인생(live)의 두문자들을 딴 것으로 마치 분쟁에서 이해로, 그리고 공존으로라는 이미지를 주고 있다. 중국의 협력이 절실해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중국내 대미강경파였던 친강 외교부장과 미국의 제재리스트에 올라있던 리샹푸국방부장이 경질됐다. 우연의 일치일까.
어떤 시나리오든, 우리도 더 유연해져야 한다. 일본·중국 정상회담은 했는데 우리는 왜 못했나. 차이나리스크 못지않게 미국 대선리스크도 있다. 그만큼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에도 귀기울여 할 이유다. 소통 강화는 결국 국내 정치의 연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