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中, 첨단경쟁 막히자 '범용 반도체' 올인…韓 LCD 악몽 재연되나

[中 파운드리의 역습]

◆ '레거시' 잠식하는 中반도체

시장규모 전체 파운드리의 62%

수요처 확보 첨단제품보다 유리

삼성도 파운드리 매출 70% 차지

中 물량공세에 최대시장 놓칠수도

韓, 정부차원 정책 지원 고민해야

삼삼성전자의 국내 반도체 생산 거점인 경기 평택캠퍼스를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 평택 3라인(P3)은 올해 하반기부터 파운드리 제품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사진 제공=삼성전자삼삼성전자의 국내 반도체 생산 거점인 경기 평택캠퍼스를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 평택 3라인(P3)은 올해 하반기부터 파운드리 제품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중국 SMIC 본사 전경. 연합뉴스중국 SMIC 본사 전경. 연합뉴스




미국의 규제로 ‘반도체 굴기’를 추진할 동력을 잃은 중국이 범용 반도체로 승부수를 띄웠다. 중국은 장비 반입 통제 속에 최첨단 반도체 경쟁이 어려워지자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상 레거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의 생산 능력을 대폭 키워 기술 패권 경쟁의 우회로를 찾아 나서는 모습이다.



파운드리 업계의 가장 치열한 전장은 3나노 등 최선단 공정에서 펼쳐지고 있지만 전체 시장 규모로 보면 여전히 레거시 공정의 비중이 더 크다. 중국의 가장 큰 무기인 막강한 정부 지원과 거대한 시장은 레거시 시장에서 가장 효과적일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아래부터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하면 최첨단 공정 경쟁에 치중하고 있는 국내 파운드리 업계가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中 레거시 공세에… “허점 찔렸다”=중국 파운드리 업계가 최근 8인치 웨이퍼를 활용한 레거시 공정의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하고 나서자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허점을 찔렸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파운드리 업계에서는 통상 보통 8인치 웨이퍼를 활용하는 7나노보다 큰 공정을 레거시로 분류한다. 고부가인 7나노 이하 최첨단 파운드리 시장은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 2021년 파운드리 사업 재개를 선언한 인텔 등 3개 기업만 실질적으로 경쟁하고 있다.



반면 레거시 파운드리는 경쟁이 더욱 치열하지만 전체 시장 규모는 더욱 크다. 지난해 4분기를 기준으로 글로벌 10대 파운드리 기업의 매출(삼성전자는 추정치)을 비교해보면 레거시 파운드리 시장은 211억 1800만 달러 수준으로 전체 파운드리 시장(335억 3000만 달러)의 62%에 달했다. 4나노 이하 선단 반도체가 서버용 칩 등 일부 최첨단 제품에만 활용되는 데 비해 레거시 제품은 거의 대부분 전자 기기에 활용되고 있어 수요처 확보에도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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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중국은 레거시로만 2분기 기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10.18%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전체 매출의 70%가량을 레거시에서 올리는 것으로 알려진 대만의 TSMC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막대한 정부 지원과 낮은 수율에도 제품을 사줄 수 있는 거대한 내수 시장을 감안하면 이른 시간 내에 시장 파이를 급격히 넓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주대영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어차피 선단 공정 쪽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니 시장 규모가 큰 레거시 부분에서 확실히 시장을 잡고 경쟁 우위를 이어가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공산품이 중국의 레거시 공정을 활용하고 있다 보니 가격 상승 우려 때문에 섣불리 규제를 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자칫 LCD 꼴 날라…업계 긴장=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경쟁하는 공정이 서로 다른 데다 고객사와의 신뢰 관계 등으로 중국의 파운드리 확장이 단기간에 직접적인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이 미국의 고강도 규제 속에서도 ‘설 자리’를 확실하게 구축하면서 한국 업체들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경고가 나온다.

중국이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고 범용 시장부터 장악에 나서면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국내 기업이 될 수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 2위인 삼성전자는 선단 공정 경쟁에 치중하느라 레거시 경쟁까지 살필 여력이 크지 않고 DB하이텍 등 레거시 공정 기업들은 중국의 물량 공세에 맞설 체력이 충분하지 않다. 과거 국내 업체들이 독주하던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중국 업체들이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장악하며 선두를 빼앗아갔던 사례가 비슷하게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레거시 공정은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 최첨단 공정 경쟁의 뒤를 받쳐줄 안정적인 수입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TSMC는 레거시 공정에서 나오는 매출이 전체의 약 절반 가까이 된다. 삼성전자 또한 EUV를 활용하지 않는 레거시 공정에서 약 70%의 매출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업계 1위인 TSMC의 추격에 애를 먹는 상황에서 레거시 공정의 점유율을 중국에 뺏기기 시작하면 2위 자리마저 지키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타격이 더 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창한 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중국 업체들은 레거시 쪽에서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한 뒤 한국에서 기술자를 데려오는 식으로 새로운 동력을 얻겠다는 전략”이라며 “파운드리뿐 아니라 전력반도체 등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는 반도체 분야에서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삼성전자의 최첨단 파운드리를 제외하면 국내 레거시 파운드리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며 “정책적 지원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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