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로 닫힌 지갑을 ‘가성비’ 제품이 열고 있는 가운데 유통 및 식품업계가 저가로 승부를 거는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같은 가격에 양을 줄인 상품을 출시하는 업계 일부의 ‘슈링크 플레이션’ 전략에 맞서 가격은 낮추고 양은 늘린 제품으로 ‘맞불’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가 슈링크 플레이션 제품이 아닌 가성비 상품을 선택할 경우 관련 제품군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GS25는 자체브랜드(PB) 용기면 ‘유어스면왕'을 이날 출시했다. 면왕은 편의점 유사 용기 라면 상품 대비 중량은 22% 늘리고 가격은 1000원 아래로 낮춘 초저가형 상품이다. 특히 GS25의 구독 서비스 ‘우리 동네 GS클럽 한끼(20%)'와 통신사 제휴 할인(최대 10%) 등 각종 할인 혜택을 활용하면 가격이 690원까지 낮아진다. 고물가 시대에 1000원이 안되는 비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상품으로 주머니 사정이 팍팍한 소비자를 겨냥한 것이다.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도 저가 상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마트 24는 앞서 이달 15일 용량을 24% 늘린 스낵 ‘빠다팝콘’을 선보였다.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제품의 양만 늘렸다. 세븐일레븐은 기존 후라이드 치킨 대비 저렴한 ‘가라아게 치킨’을 지난 7월부터 판매하고 있다. 가성비 아이템으로 출시된 가라아게 치킨은 10g당 가격이 140원으로 기존에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치킨보다 약 20% 저렴하다.
슈링크 플레이션 전략을 거스르는 업계는 유통업계 뿐만이 아니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식품업계는 ‘초저가’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신세계푸드는 이달 중순 단품 2900원, 세트 4900원이라는 역대급 가격의 노브랜드 버거 ‘짜장버거’를 선보였다. 기존 프랜차이즈 버거 단품 가격이 4000~7000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반값 정도 되는 셈이다.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출시 3일 만에 3만 개가 팔렸다.
커피업계의 경우 스타벅스가 적극 나서고 있다. 스타벅스는 최근 올해 여름 한정 상품으로 출시해 화제를 모은 ‘트렌타(887㎖)' 사이즈를 상시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트렌타는 기존 가장 큰 사이즈인 ‘벤티(591㎖)' 대비 1.5배 크지만 용량 당 가격이 저렴해 큰 인기를 끌었다. 스타벅스는 트렌타 제품이 출시 75일 만에 150만 잔이 넘게 팔리자 여름인 9월까지만 출시한다는 계획을 수정했다.
식품 및 유통업계가 이처럼 가성비 제품 출시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은 고물가 시대에 ‘낮은 가격’ 자체가 최고의 마케팅 전략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리다매를 통해 ‘규모의 경제’ 효과도 노릴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에 더해 정부가 물가 안정에 총력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당국 정책에 보조를 맞춘다는 명분도 챙길 수 있다.
업계에서는 고물가가 지속되는 한 가성비 제품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김대종 GS25 가공기획팀 MD는 “고물가 장기화, 슈링크플레이션 논란 속 이번에 선보인 물가안정 PB라면 면왕이 호응을 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향후 상품 라인업 확대·강화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의 관계자는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면 중장기적으로 집객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며 “당장의 작은 이익보다 훗날 큰 이익을 노리는 업체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