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방패’라 불리는 이지스 구축함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 일본뿐이다. 이 세 나라 중 가장 최신 차세대 이지스함 정조대왕함은 내년 말 우리 해군 인도를 앞두고 시험평가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일 시험평가를 위해 울산 HD현대중공업(329180)에 정박한 우리나라 군의 최신 함정인 차세대 이지스함 정조대왕함에 승선했다.
8200톤급 정조대왕함의 길이와 폭은 170m, 21m다. 이 함정을 세우면 45층 건물 정도 되는 거대한 규모다. 정조대왕함은 2019년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하고 지난해 진수됐다.
갑판에 올라가자 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하지만 정조대왕함의 눈은 1800㎞ 밖 1800개 표적을 동시에 포착한다. 북한 전역에서 발사된 탄도탄을 탐지해 요격할 수 있다. 중국 베이징이나 일본 도쿄까지의 거리도 커버할 수 있다. 실제 22일 북한이 백령도와 이어도 서쪽 공해 상공으로 쏜 발사체도 우리 해군 이지스함이 남해 먼바다 상공을 빠져나갈 때까지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정조대왕함은 현대 함정 기술의 총집합체다. 최태복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이사는 정조대왕함을 가리키더니 “9월 여기 방문한 미국 7함대 사령관이 정조대왕함을 보고 ‘아름답다’고 평할 정도”라고 말했다. 수상함은 보통 잠수함에 취약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집채만 한 크기의 통합 소나 체계를 넣어 대잠 방어 능력을 보완하고 장거리에서 다가오는 대잠 어뢰 홍상어도 탑재했다. 이밖에 지상으로부터 12㎞ 높이에 있는 고고도탄도미사일을 식별하는 최신형 이지스 전투 체계와 대잠·대함·대공·대지 다기능 복합 전투 체계를 보유하고 있다.
선체 안은 오직 ‘전투 시 승리’만을 위한 구조로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9개 층 500개에 이르는 격실은 미로처럼 설계됐다. 위층과 아래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사다리처럼 가파르고 좁았다. 비좁은 복도와 방을 만든 것은 최신 무기 체계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전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은 탄도미사일 탐지와 추적만 할 수 있지만 정조대왕함은 요격까지 가능하다. 또 함대지탄도유도탄·장거리함대공유도탄·탄도탄요격유도탄 등도 새로 포함돼 전투 능력이 배가됐다.
세계 최고 상선을 만드는 조선소에서 건조된 만큼 선박 자체 성능도 최고 수준이다. 8200톤 함정이 시속 55㎞까지 항해할 수 있는데 이는 하이브리드 전기추진체계(HED) 엔진 덕분이다. 가스터빈 4대와 전기 추진 체계 2대를 결합해 저속 항해를 할 때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경제적으로 운항할 수 있다.
정조대왕함은 단순한 함정에서 나아가 최신 기술이 집약된 하나의 상품이 되고 있다. 세계로 나가는 우리 대표 수출품으로 올라서고 있는 것이다. 22일 HD현대중공업은 울산조선소에서 한국과 필리핀 양국 해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3200톤급 필리핀 초계함 1번함 기공식도 열었다. 필리핀 해군은 호위함 6척과 초계함 12척을 확보하는 사업을 진행하며 HD현대중공업에 총 10척의 함정을 발주한 바 있다.
지정학적 갈등에 함정 소요가 늘어나며 HD현대중공업도 이제 특수선사업부를 수익을 내는 하나의 사업 조직으로 탈바꿈한다는 전략이다. 상선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조선소인 만큼 함정 분야에서도 빠르게 선두 방산 업체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주원호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본부장은 “지금보다 매출을 2배 늘려 특수선 사업으로 독자 운영이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며 “이번에 수주한 필리핀뿐 아니라 다른 동남아 지역과 중동·남미까지 수출 전선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잠수함에 대한 자신감도 내비쳤다. HD현대중공업은 국내 최초로 리튬이온폴리머 전지를 이용한 잠수함용 전원 공급 체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HD현대중공업은 잠수함 강자인 한화오션과 최근 1조 원대 3000톤급 장보고Ⅲ 배치2 3번함 입찰에 참가했다.
최 이사는 “함정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무기 체계 등을 공급하는) 방산 업체 간에 협력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 역시 수출과 내수가 선순환되는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며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