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예산 전용 위헌 결정으로 독일 연립정부(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녹색당)가 86조 원의 예산 부족 사태에 처한 가운데 국민들의 정부 지지율도 2년 전에 비해 18%포인트나 하락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대국민 담화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연말까지 확정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가스·전력요금 지원을 조기 종료하기로 하면서 가계에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로이터통신은 독일 빌트지의 일요판 ‘빌트암존탁’이 실시한 주간 여론조사 결과 연립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34%로 2021년 연정이 처음 성립했을 당시에 비해 18%포인트 낮아졌다고 26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제1당인 사회민주당이 16%에 그쳤으며 연정 주요 파트너인 녹색당에 대한 지지율은 12%로 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들 정당과 연정을 꾸린 자유민주당도 6%에 그쳤다. 반면 보수 야당인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은 30%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고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도 22%로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했다. 독일 여론조사 기관 InSA의 헤르만 빙커트 대표는 “2025년 총선 이후 사회민주당이나 녹색당이 정권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연립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낮아진 것은 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나면서 정부가 사상 초유의 예산집행 중단 사태를 맞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15일 독일 헌재는 정부가 부채 제동장치를 회피하기 위해 활용한 특별예산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무효 판단을 내렸다. 독일 헌법에 규정된 부채 제동장치는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0.35%까지만 부채를 조달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다만 2021년에는 코로나19 위기로 부채 제동장치 적용 제외가 결의돼 있었고 당해 사용하지 않은 예산이 있었다. 당시 집권한 숄츠 총리의 연립정부는 기후변화 등 녹색산업 관련 신규 사업을 약속하면서 쓰이지 않은 코로나19 대응 예산 600억 유로(약 86조 원)를 기후변환기금(KTF)으로 전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최대 야당인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은 이 같은 예산 전용이 위헌이라며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KTF를 위한 국채 발행 허가가 철회됐다. 당장 올해와 내년 예산에서 KTF를 통해 재원 조달이 예정됐던 사업은 모두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 독일 재무부는 헌재 결정 이후 전 부처에 신규 지출 전면 중단을 요청하고 에너지 가격 급등 대응 용도인 경제안정기금(WSF)의 신규 지출도 보류했다.
이에 숄츠 총리는 24일 대국민 영상 담화에서 예산집행 중단 사태의 신속한 해결을 약속하며 28일 연방의회에서 국정 보고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예산 대란으로 인한 타격은 가계에 경제적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정부는 당초 내년 3월까지였던 가스·전기요금 지원을 올해 말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전력·가스 보급망에 대한 지원금까지 삭감될 경우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가계의 타격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