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여명]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김정곤 바이오부장

오랜만에 조(兆) 단위 기술수출

혹한기 바이오업계 희망의 소식

고금리 기조로 자금 조달난 가중

파두 사태로 의혹의 눈초리까지

R&D 지속하며 어떻게든 버텨야

김정곤 바이오부장김정곤 바이오부장




“얼마 만에 들려온 기쁜 소식인지 모르겠습니다. 조(兆) 단위 기술수출보다 더 눈에 띄는 건 계약금 규모예요. 기술수출이 반환돼도 돌려줄 의무가 없는 계약금만 1000억 원이 넘어요. 다른 제약·바이오사들도 좋은 기운을 받아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A 제약사 관계자)



전통 제약사인 종근당이 이달 초 13억 500만 달러(약 1조 7302억 원) 규모의 초대형 기술수출 계약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오랜만에 들려온 ‘굿뉴스’에 크게 고무됐다. 종근당이 터트린 잭팟은 우연이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투자해온 연구개발(R&D)의 결실이라는 평가다. 종근당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 동안 7480억 원을 R&D에 투입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 대비 R&D 비중은 평균 12%대를 유지하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체들은 보통 10년 이상 걸리는 신약 개발에 천문학적인 임상 비용을 투입하며 R&D에 매진하고 있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최초의 혁신 신약인 ‘퍼스트 인 클래스(First in Class)’ 신약으로 인정받을 경우 높은 가치에 기술수출을 하거나 R&D를 계속 이어갈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올 들어 전통 제약사인 일동제약과 GC녹십자·유유제약이 신약 개발 및 사업 부진 등으로 조직 효율화를 위한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다른 업종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전통 제약사들까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그만큼 현재 시장 환경이 좋지 않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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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약 R&D를 이어가기 위해 안정적인 외부 자금 조달이 필수인 바이오 업체들이 겪는 어려움은 상상을 넘어선다. 글로벌 경기 부진과 고금리 기조로 자본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생사의 기로에 선 곳이 여럿이다. 유상증자 등 신규 자금 유치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과거 조달했던 자금의 만기가 속속 도래하는데 시장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해 추가 비용 부담이 크다. 결국 선택과 집중을 통해 비용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반강제적으로 내몰리고 있다. 수년간 개발해온 신약 후보 물질(파이프라인)을 포기하거나 R&D를 이어가기 위해 선제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곳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증권시장에서 불거진 ‘파두’ 사태도 바이오 업체의 투자 유치를 더욱 힘겹게 하고 있다. 신약 개발 이전에는 눈에 띄는 실적을 내기 힘든 바이오 업체의 특성상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기업공개(IPO)를 하는 곳이 절대 다수다. 기술특례 IPO로 증시에 입성한 파두가 ‘뻥튀기 상장’ 논란에 휘말리면서 다수의 바이오 업체들이 같은 의심을 받고 있다. 파두의 불똥이 바이오 업체로 튄 형국이다. 기존에 기술특례상장한 바이오 업체는 물론이고 기술특례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업체들에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될 것이 분명하다.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시장에서 주목받던 업체들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B 바이오 대표는 최근 회사 설립 이래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신약 R&D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창업 이래 동고동락하던 직원들을 내보내기로 결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신약 개발을 열심히 해왔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며 “회사 상황이 좋아지면 (회사를 떠난 직원들에게) 가장 먼저 연락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절망적인 순간이 지나고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좋아질 날을 기대해본다”고 강조했다.

B 바이오 대표의 말처럼 언제 혹독한 겨울이었느냐는 듯이 따듯한 봄은 다시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운 대외 환경을 견뎌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뛰어난 기술력과 탄탄한 기업 펀더멘털이다.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어느 때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R&D를 멈추지 말고 뚝심 있게 지속해야 하는 이유다. R&D 성과를 통해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업체가 많이 나올수록 K바이오 생태계도 건강해진다.

한파가 몰아치는 혹독한 겨울에도 꽁꽁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강물은 계속 흐른다.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바이오 업체들이 힘겨운 겨울을 잘 견뎌내기를 바란다.


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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