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이미 지병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정적 사인은 저체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2021년 12월 9일 전북 전주시의 한 주택. 그 해 겨울은 중증 치매를 앓고 있던 70대 A씨에게는 유달리 춥고 가혹했다. 이미 노을마저 져버려 어둑한 오후 6시50분께 A씨의 딸 B(49)씨는 냄새가 난다며 A씨의 옷을 벗기고 집 밖으로 쫓아냈다. 당시 기온은 10.6도였다.
추위에 덜덜 떨고 있던 A씨를 발견한 건 지나가던 이웃 주민이었다. 이웃 주민들은 집 문을 수 차례 두드리고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노모는 벗은 몸으로 덜덜 떨며 1시간 30분 가량을 견뎌야만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이웃이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출동하고 나서야 B씨는 문을 열었다. 그제서야 A씨는 차디찬 길바닥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고령의 A씨에게는 12월의 찬 바람이 독이 된 것일까. 약 1시간 뒤 경찰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담당 사회복지사가 A씨를 보러왔을 때 그는 이미 싸늘해진 뒤였다. A씨는 나체로 엎드려 누운 채 담요를 덮고 있었는데 B씨는 “A씨가 자꾸 옷을 벗으려고 해서 그랬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됐다.
딸 B씨는 존속학대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심 결과는 무죄였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는 체온이 어느 정도 회복됐을 것이고, 당뇨 등 다른 지병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집 안에서 담요를 덮고 있었고, 피해자가 옷을 입지 않으려 했다는 피고인의 말에 수긍이 간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광주지검은 즉시 항소했다. A씨에 대한 부검 결과와 전문가 인터뷰, 기존 지병에 대한 진료기록부, 이웃들의 증언 등을 참고해 반박 논리를 만들었다. 항소심에서는 “원래 지병이 있는 경우라도 저체온이 악화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부검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전문가들이 “고령의 치매 환자인 데다가 당뇨까지 있는 피해자가 겨울 날씨에 알몸으로 밖에 있었다면 얼마든지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제시한 의견을 종합했다.
결국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자기 말에 따르도록 하려고 집 밖으로 내보낸 행위 자체만으로도 학대 행위에 해당한다”며 “외부 인자(피고인 행위) 없이 갑작스레 저체온증으로 인한 심장마비가 왔다고도 볼 수 없다”고 인정했다. 아울러 “자신을 오랜 기간 돌봐 준 고령의 모친을 학대한 행위는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높고 그에 따른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고인은 20대 때부터 정신질환을 앓아왔고 정상적인 판단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학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오로지 피고인만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어려운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지난달 18일 B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