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청론직설] “저출산 파격적 대책 고민할 때…노동·교육구조, 가족제도 확 바꿔야”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저출산 예산 280조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되레 악화

정책 수요 다양, 시간선택제 근무 등 맞춤형 대책 짜야

기업도 우수 인재 유치하려면 일·육아 병행 문화 필수

육아휴직 대체인력 걸림돌 없애고 비혼 출산 공론화를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2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 산업화·근대화 시대에 머물러 있는 노동·교육 시장 구조, 결혼·출산 등 가족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2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 산업화·근대화 시대에 머물러 있는 노동·교육 시장 구조, 결혼·출산 등 가족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역대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수백조 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에 그치는 등 인구 절벽의 현실은 갈수록 암울해지고 있다.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2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 파격적인 대책도 고민해야 한다”며 “산업화·근대화 시대에 머물러 있는 노동·교육 시장 구조, 결혼·출산 등 가족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위원장은 그동안의 저출산 대책이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이었다며 “연령, 지역, 근무 형태에 따라 수요가 천차만별이므로 재택근무나 시간선택제 근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맞춤형 대책을 짜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 예산을 많이 쏟아붓고 있는데도 외려 출산율은 더 떨어지고 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저출산 예산으로 280조 원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막대한 규모일 수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부족한 부분이 많다. 실제로 출산율을 높이고 양육을 지원하는 데 충분한 돈을 썼느냐는 측면에서 봤을 때 그러지 않았다. 실제로 출산율 제고를 위한 ‘가족 복지 지출’을 보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6%에 불과하다. 프랑스가 3.44%에 달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2%를 넘는 것과 비교하면 적은 편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고령화 대책에 정책의 방점이 찍혀 돌봄 관련 예산은 많지 않았다. 또 보육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적재적소의 예산 투입이 이뤄지지 않았다.

-돌봄 등과 관련된 예산이 여전히 적다는 지적이 많은데.

△그동안 청년 주거 문제 해결에 예산 투입을 집중한 영향이 크다. 청년 주거 지원이 전체 저출산·고령화 예산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돌봄 등 일·육아 병행 관련 예산은 거의 정체되다시피 했다. 저출산 대책 사업과 그곳에 투입되는 예산 하나하나를 다시 뜯어보고 있다. 저출산과 전혀 무관한 사업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으로 중앙정부의 저출산 대책 사업이 240개를 넘는다. 이 사업들이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저출산 문제는 높은 집값, 일자리 부족, 과도한 사교육비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은 일시에 해결하기 쉽지 않은 과제이므로 중장기적 전략으로 접근해야 된다.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는 노동 개혁,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교육 개혁 등을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출산 의사가 있는 국민, 특히 청년층이 원하는 때에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육아를 하면서 일할 수 있는 기업 및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일·육아 병행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인데.

△최소한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만 갖춰줘도 어느 정도까지는 출산율 회복이 가능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가족 정책은 수요자 입장이 아니라 공급자 위주였다. 지역별 편차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어린이집 다니는 비율을 높이자는 식으로 접근해왔다. 하지만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연령대, 고용 형태, 기업 규모에 따라서, 수도권·지방 가운데 어디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서 필요한 정책이 다르다. 보육 정책도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으로 짜야 한다.

-맞춤형 대책의 구체적 사례를 거론한다면.

△어린이집을 운영하려면 교사 대 아동 비율을 충족해야 한다. 연령대별로 아이 3명당 교사 1명 등의 제한이 있다. 이 비율을 맞춰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인구 감소 지역에서는 이를 충족하는 게 힘들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 여건을 고려해 규제 기준을 낮춰달라는 요구가 많다. 또 신도시에서는 입주 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신도시를 만들거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때 아예 계획 단계부터 돌봄 시설 수요를 미리 조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일·육아 병행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필요한가.

△아이가 어려서 돌봄이 필요한 경우에는 일하는 시간이나 근무 형태 등을 유연화하는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 재택근무나 시간선택제 근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의 경우 영아 시기에 부모가 근무시간을 1~2시간 줄여 아이를 돌보고, 어린이집에 보낼 때가 되면 부모가 오후 4시가량에 일찍 퇴근해 아이와 함께 지낸다. 우리도 이렇게 되면 일과 아이를 모두 선택하는 여성들이 늘어날 것이다. 기업들이 육아휴직 대체 인력을 보다 쉽게 구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고치는 것도 필요하다. 6개월~1년 미만의 육아휴직 대체 인력을 뽑으려 해도 정규 인력 채용처럼 절차가 복잡하고 제약이 많다.





-자동육아휴직제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관련기사



△보육과 관련해 청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육아휴직 좀 편하게 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문이 가장 많다. 지금 청년 세대는 육아휴직을 쓰면서 아이를 직접 돌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므로 이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롯데그룹이 2012년도에 대기업 최초로 자동육아휴직제를 도입했다. 출산휴가가 끝나면 별도로 신청하지 않더라도 바로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제도화한 것이다. 롯데가 자체적으로 제도 시행 10년 성과를 분석해보니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일·육아 병행 제도와 문화가 다른 기업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다양한 인센티브 발굴 등을 통해 지원해야 한다.

-지금 있는 육아휴직도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불만이 많다.

△직장인들은 육아휴직제를 못 쓰는 주된 이유 중 하나로 낮은 (육아휴직) 급여 수준을 꼽고 있다. 기존 소득 대비 육아휴직 때 받는 급여가 낮아 휴직 선택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가 육아휴직자에게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상한액이 월 150만 원으로 낮은 편이다. 이 상한을 200만 원 정도로 올리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6000억 원에서 1조 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 고용보험기금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 재원 구조를 바꾸는 방안도 들여다보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출산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예전에는 경력 단절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지만 지금은 많이 완화됐다. 그 이유는 여성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출산도 기피하고 있어서다. 그만큼 일을 더 많이 선택한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여성들이 출산 대신 출세를 선택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제는 여성들이 자기 커리어를 포기하면서 아이 낳고 키우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런 변화에 대응하는 정부의 정책 개발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청년들의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는데.

△낮은 출산율이 고착화되면서 청년들 사이에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일·육아 병행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꾸준하게 펼치면 합계출산율을 1.0명까지는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려면 결혼과 출산에 대해 젊은이들이 긍정적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 정부의 정책 개발과 지원 못지않게 직장 문화를 일신하려는 기업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변해야 하는 이유는.

△청년들에게 ‘왜 결혼과 출산을 꺼려합니까’ ‘무엇이 바뀌어야 될까요’ 하고 물어보면 주거 안정과 함께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근로 환경 조성을 주문한다. 앞으로 가족 친화적 직장 문화는 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될 것이다. 육아휴직제 등 가족 친화적 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기업들에는 인재들이 몰릴 것이고 그렇지 않은 업체들은 우수한 인력을 채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가족 친화 기업을 어떻게 선별할 수 있을까.

△정부가 기업들의 육아휴직 활용률 등을 조사해 지표로 만들어 공표하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다. 이 지표가 우수한 기업에 가족 친화 기업 인증을 부여하고 세제 감면, 근로 감독 및 세무조사 면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활성화시킨다면 가족 친화 기업들의 신뢰도가 높아져 우수 인재 채용과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뒤처진 기업에 대해 페널티를 주기보다는 잘하고 있는 기업들에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출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발상을 전환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 대책도 고민해야 한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결혼·출산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산업화·근대화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결혼·출산 제도, 노동·교육 시장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민 제도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청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결혼에 대한 긍정 비율이 상당히 낮은 반면 비혼 동거에 대한 긍정 비율은 높다. 비혼 출산에 대한 인식도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동안 우리가 금기시해왔던 이런 주제들을 공론화할 때가 됐다. 산업화 시대에 맞춰진 가족 제도의 틀을 유지해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She is…

1977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보건복지부 사회보장위원회 위원, 한국사회보장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올해 1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임석훈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