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싫어해서 안 돼요. 외교 분쟁이라도 나면 어떻게 합니까.”
기자가 서울시청을 출입하던 2008년 시 공무원한테 ‘광화문에 광개토태왕상(廣開土太王像)을 세우면 좋겠다’고 얘기했다가 들은 말이다. 당시 오세훈 시장 시절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하던 서울시에서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광화문에 누구의 동상을 세우면 좋을지에 관해 세종대왕상을 포함해 설문조사를 준비하던 때였다. 이에 기자는 ‘우선 정도 600년이 아니라 2000년으로 써야 한다. 이순신 장군상을 유지한 채 세종대왕상과 함께 광개토태왕이 말 위에서 칼을 뽑아 대륙을 호령하는 동상을 같이 세워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가 실망스러운 답변만 들었다. 결국 서울시는 다음 해 이순신 장군상 인근에 세종대왕상만 추가로 세웠다.
물론 광화문을 걷다가 문무의 대표적인 두 영웅을 바라보면 우리 삶을 성찰하고 다짐하는 계기가 돼 좋지만 혹시 외국인들에게는 ‘우리 역사가 5000년이 아닌 500년으로 비치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많은 사람이 정도 600년이라고 하지만 사실 서울은 2000년 역사의 유서 깊은 도시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동명성왕)의 아들 온조·비류 형제가 기원전 18년 세운 백제는 492년간 서울(위례성·풍납토성)을 수도로 삼았다. 충청도 공주·부여에 머문 기간은 185년에 그친다.
고구려와도 인연이 깊은 광진구의 아차산성은 고구려의 중요한 남진 기지 중 하나였다. 충주 고구려비를 보면 광개토태왕(재위 391~413년)이 북한강·남한강 유역을 정복하고 신라에도 군대를 주둔시켰음을 알 수 있다. 태왕은 5만여 명의 대군을 보내 신라를 괴롭히던 왜구도 소탕했다. 특히 만주 대륙과 한반도를 호령한 것은 물론 베이징 일대와 내몽골 초원까지 정복하며 대제국을 건설했다. 우리 역사상 가장 강성한 나라를 만든 것이다. 태왕은 왕중의 왕이라는 뜻으로 황제·천황과 비슷한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대왕이라 칭하며 정명(正名)을 하지 않고 있다. 충주 고구려비에서도 태왕을 가리켜 고려태왕(高麗太王)이라고 했듯이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다. 고려는 태조 왕건의 활동 무대였던 개경을 수도로 삼았지만 서울을 남경(南京)이라고 부르며 11세기에 궁궐을 짓고 천도 계획까지 세웠다. 청와대를 관람하면 이곳이 고려 황제의 별궁이 있던 곳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K팝·K드라마·K영화·K푸드 등 한류의 파급력이 매우 크다. 해외 관광객이 크게 늘어난 것은 물론 유학생과 외국 노동자들도 증가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광화문에서 조선의 대표 인물상만 기리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자문해볼 일이다. 조선의 궁궐만 봐도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희궁이라는 5대 궁궐이 일제에 의해 대거 파괴·분절된 상황에서 일부만 보고 다 봤다고 여길 염려가 있다. 우리 입장에서 보더라도 재작년 유엔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았지만 2050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이 인도네시아·나이지리아·베트남에 뒤질 것으로 분석(골드만삭스)되는 상황에서 광개토태왕상을 세워 도전하고 모험하는 기업가정신(起業家精神)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수도 등 주요 도시에 있는 기마상은 그 나라의 정체성과 기상을 상징한다. 특히 유럽의 주요 도시에는 말을 탄 영웅의 동상이 많다.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궁전과 빅투아르 광장에 태양왕 루이 14세,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 의회 광장에 사자왕 리처드 1세, 이탈리아 로마 캄피돌리오 광장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황제의 기마상이 있다. 미국에도 뉴욕 맨해튼 유니언스퀘어에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기마상이 있다.
우리도 민족의 웅혼한 정신을 일깨우고 세계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광화문에 광개토태왕비를 세울 때가 됐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중국 눈치를 보고 못한다는 말은 안 나올 테니 말이다. 중국은 동북공정·문화공정, 일본은 임나일본부설과 독도·동해 역사 조작 등 없는 역사도 만들어 세계에 선전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있는 역사도 제대로 알리지 않는지, 혹시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가 짜놓은 식민사관의 영향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냉철히 되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