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디자인과 준수한 주행 성능을 갖추면서도 가격은 합리적인 전기차. 이런 전기차를 원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개화함에 따라 소비자들의 요구 사항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얼리 어답터들은 이미 전기차를 구매했고 이젠 가격과 성능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다. 최근 완성차 제조사들이 가성비로 무장한 중소형 전기차를 앞다퉈 선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찍이 전동화 전환에 박차를 가한 볼보자동차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전에 없던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X30을 선보였다. 볼보가 자랑하는 디자인, 주행, 안전 기술을 그대로 담아내며 가격을 4000만 원대로 설정해 ‘저렴하지만 매력적인 전기차’의 표본을 보여줬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마주한 EX30은 멀끔하면서도 세련된 매력을 뽐냈다. 준중형 SUV인 XC40의 모습이 겹쳐 보일 정도로 기존 내연기관 모델의 디자인 정체성을 일부 계승했다. 전기차에 파격적인 디자인 변화를 시도하는 일부 제조사와 달리 익숙함을 택해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볼보의 패밀리룩인 ‘토르의 망치’ 유기발광다이오드(LED) 헤드라이트도 세련된 변화를 거쳐 디자인의 중심을 잡아준다.
콤팩트 SUV로 분류되지만 차체가 결코 작지 않다. 전장(길이)이 4233㎜로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보다 117㎜ 짧지만 휠베이스(축간거리)는 2650㎜로 거의 유사하다. 여기에 큰 휠과 높은 지상고로 균형 잡힌 차체 비율을 구현하며 콤팩트하지만 단단한 SUV라는 인상을 준다.
실내는 대담한 변화를 거쳤다. 계기판을 없애고 12.3인치 센터 디스플레이에 모든 기능을 통합했다. 스티어링 휠 너머로 속도와 각종 정보를 제공하던 화면이 사라지자 어색함이 느껴지지만 넓은 시야가 확보되고 디스플레이의 위치가 기존 계기판 높이로 배치돼 쉽게 적응할 수 있다. 국내 출시 모델에는 기존 볼보 모델과 동일하게 티맵 인포테인먼트 플랫폼이 탑재된다. 다만 사이드미러를 조정하는 버튼까지 디스플레이에 넣어버려 익숙해지기까진 시간이 필요하다.
1열 공간을 확장하고 곳곳에 수납공간을 배치한 점도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도어 트림에 있는 여러 개의 스피커를 앞 유리 하단에 통합해 새로운 수납공간을 만들어냈다. 글로브 박스도 중앙 스크린 아래로 옮겨 탑승자의 접근성을 높였다. 센터 콘솔은 필요에 따라 컵 홀더로 사용하거나 스마트폰을 보관할 수 있다.
EX30의 진가는 주행 중에 나타난다. 콤팩트 SUV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안정되고 탄탄한 주행감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전기차 특유의 울컥거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전기차를 타면 감속과 가속, 회생제동을 이용할 때 이질감을 경험하게 되지만 EX30은 어떤 상황에서도 부드럽게 속도를 내고 줄인다.
고속도로에 올라 속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도 안정감이 유지된다. 가속력은 폭발적이다. 국내에 출시된 EX30은 69kWh 배터리와 200kW 모터를 결합한 후륜 기반 싱글 모터 익스텐디드 레인지 파워트레인을 탑재했다. 최고출력 272마력, 최대토크 35.0㎏·m의 강력한 힘을 뿜어낸다. 액셀을 깊이 밟으면 속도계 숫자가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빠르게 치솟는다.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거리는 WLTP(유럽) 기준 475㎞에 달한다.
차체는 작아졌지만 볼보가 자랑하는 안전 기술은 그대로 녹아들었다. 5개의 레이더와 4개의 카메라, 14개의 초음파 센서가 외부와 내부를 모니터링 해 안전한 운전을 지원한다. 스티어링 휠 상단의 센서가 운전자의 움직임을 살피며 주의가 산만해질 경우 경고하는 운전자 모니터링 경보 시스템이 새롭게 추가되기도 했다. 파일럿 어시스트 등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 활성화된 경우에도 작동해 미연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도록 이중으로 돕는다.
국내 판매 가격은 4945만 원부터 시작한다. KG모빌리티의 전기차 토레스 EVX(4750만 원)와 비슷한 가격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받으면 4000만 원 초반으로 가격이 낮아진다. 이 정도 가격에 볼보의 세련된 디자인, 폭발적이고 안정적인 주행감, 안전 기술을 누릴 수 있다니. ‘파격’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전기차 대중화를 선도할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