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이창용 "긴축, 충분히 장기간 지속"…내년 상반기 피벗 기대에 찬물

[기준금리 7연속 동결]

■ 한은 고금리 장기전 돌입

美금리·중동 등 리스크 완화에도

내년말 이후에나 물가 2%대 수렴

목표수준까지 기존금리 유지할듯

인하 주장 금통위원 한명도 없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11.30 사진공동취재단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11.30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30일 내놓은 정책 결정문에서 향후 통화 긴축 기조의 지속 기간과 관련한 표현을 ‘상당 기간’에서 ‘충분히 장기간’으로 바꾼 것은 핵심적인 변화다. 통상 ‘당분간’은 3개월, ‘상당 기간’은 ‘6개월’로 해석하는 관례에 비춰볼 때 ‘장기간’은 6개월보다 더 긴 시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은이 내년 말에나 물가가 2% 목표에 수렴할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 즉 6개월 이상 금리 동면기에 접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그간 한은은 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추가 인상 가능성에 조금 더 힘을 실어왔다. 이번에 태도가 달라진 것은 대외 불확실성이 완화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 데다 이스라엘·하마스 등 중동 사태도 확산 가능성이 줄어 물가·성장 등 국내 여건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이날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리 결정 이후 기자 간담회에서 ‘(통화 긴축을) 충분히 장기간 지속하겠다’는 표현에 대해 “(긴축 기조 유지 기간을) 6개월로 못 박고 싶지 않아서 ‘상당 기간’이라는 표현을 안 쓰기로 한 것”이라며 “물가가 2%대 목표 수준에 수렴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충분히 긴축하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조건부라는 전제를 달고 “현재 성장률과 물가 전망대로면 물가가 2%대로 수렴하는 시기는 내년 말이나 2025년 초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한은은 올해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6%, 2.6%로 각각 0.1%포인트, 0.2%포인트씩 상향 조정했다. 물가가 2%대로 수렴하는 시기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물가 상방 압력이 여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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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이 총재는 “미국 등에서 조만간 금리 인하 사이클이 시작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 걸 잘 알고 있는데 다른 중앙은행 총재들의 말을 들어보면 ‘확실히’ 시장이 앞서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를 종합하면 국내외 모두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제동을 건 셈이다.

금통위원들도 추가 인상보다는 동결로 점차 기우는 모습이다.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가운데 4명은 향후 3개월 이내 여전히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나머지 2명은 현 금리 수준에서 동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추가 인상 의견을 내는 금통위원 수는 6명(5·7·8월)에서 5명(10월), 다시 4명(11월)으로 줄면서 동결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총재도 “소비가 둔화되는 조짐이나 부동산 가격 조정이 이뤄지는 점을 보면 지금 기준금리가 충분히 긴축적인 수준”이라며 “얼마나 오래 끌고 가느냐에 따라 효과가 다를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동결에 무게를 싣기도 했다.

실제 금리를 올릴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이날 이 총재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우려했듯 고금리로 인한 금융 안정 문제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가 예상 경로대로 둔화하고 있다”고 한 대목이나 “가계대출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언급한 점도 추가 인상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1.4%로 유지하면서도 내년 전망치를 2.2%에서 2.1%로 낮췄는데 주요 요인으로 통화 긴축 기조 장기화와 더딘 소비 회복세를 지목했다. 내수 회복 모멘텀이 약해졌다고 평가한 만큼 추가 인상에 나서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시장은 한은이 최소 6개월 이상 금리 동결을 시사한 만큼 당분간 인하 가능성이 낮아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물가 전망치가 상향 조정된 것을 보면 상반기 중 인하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하반기에도 한 번 이상 인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한은의 그림은 추가 인상 가능성을 낮추며 시장 기대보다는 오랫동안 고금리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라며 “빠른 금리 인하 기대까지 불거졌던 채권시장은 이번 금통위 이후 다소 진정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한편 올해 마지막으로 열린 이번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 직후 박춘섭 금통위원이 대통령실 경제수석에 임명됐다. 신년 1월 11일 예정된 내년도 첫 통방회의까지 박 위원의 후임이 임명되지 않으면 이 총재를 포함한 금통위원 6명이 금리를 결정하게 된다. 박 위원의 후임 금통위원은 잔여 임기를 이어받는다.


조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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