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국회 손놓은 새…'체불 26회' 사업주, 집유 중에도 임금 안줬다

■ 법 비웃는 악덕사업주들

올 10월까지 임금체불액 1.4조

매년 피해자 20만~30만명 달해

尹 제재강화 법안 통과 당부에도

근로기준법 개정안 국회서 낮잠

"벌금내면 그만" 상습사업주 양산

中企서도 입법 필요성에 공감대

시민들이 11월 29일 눈 내리는 서울 여의도에서 퇴근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2023.11.29시민들이 11월 29일 눈 내리는 서울 여의도에서 퇴근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2023.11.29




고용노동부 목포지청은 올 9월 전기 업자 A 씨를 임금 체불에 따른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수사 중이다. A 씨는 전국 공사 현장 9곳에서 22명의 일용근로자 임금 약 4000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하루 벌이로 불릴 만큼 생계를 위해 일하는 상당수 일용근로자의 삶을 위협한 것이다. 고용부가 A 씨를 구속까지 한 것은 A 씨가 상습적인 임금 체불을 했기 때문이다. A 씨는 구속될 당시 이미 2022년 8월 임금 체불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에 동일 범죄를 다시 저지른 것이다. A 씨는 2011년부터 올해까지 스물여섯 번이나 임금 체불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박철준 목포지청장은 “A 씨는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해 임금을 주지 못했다고 주장했지만 임금 체불을 상습적으로 반복해 수많은 근로자에게 피해를 줬다”고 구속 이유를 설명했다.



법에서 금지한 임금 체불을 우습게 여기는 악덕 사업주가 늘고 있다. 이들은 ‘벌금만 내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인식으로 임금 체불을 반복하면서 근로자의 생계를 흔든다. 정부는 임금 체불을 중대 범죄로 여기고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국회는 정부 대책에 대한 입법에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1일 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고용부 단독 또는 여당과 발의한 임금 체불 대책 법안은 크게 두 가지다. 모두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국회 상황을 보면 21대 국회에서 처리가 불투명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점점 심각해지는 임금 체불 문제를 고려하면 국회가 너무 느긋하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나온다. 임금 체불액은 올해 1~10월에만 1조 4500억 원으로 이미 2021년(1조 3505억 원)과 2022년(1조 3472억 원)을 넘어섰다. 임금 체불 피해자는 매년 20만~30만 명에 이른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것은 근로자와 그 가족의 삶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국회에 법안 처리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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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올 5월 당정이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6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상습 체불 사업주를 정의하고 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 제한 등 불이익을 더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상습 체불 사업주만 줄여도 임금 체불 문제 해결에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5년간 2회 이상 반복 체불한 사업주는 전체 체불 사업주의 약 30%다. 이들의 체불액 비중도 전체의 80%에 이른다. 법안은 최근 1년 내 근로자 1인당 3개월분 이상 임금을 체불하거나 5회 이상 체불 총액이 3000만 원 이상이면 상습 체불 사업주로 규정했다. 이 사업주는 정부 지원금 혜택이 제한되고 공공 입찰 시 감점 등 불이익을 받으며 신용 제재도 받을 수 있다. 다른 대책인 임금채권보장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고용부가 발의했다. 체불임금에 대해 사업주가 대지급금보다 융자로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는 체불임금을 종전보다 빨리 받을 수 있다. 대지급금제도는 정부가 임금 체불 피해를 겪은 근로자를 위해 대신 변제하고 변제금을 돌려받는 방식이다.

당정이 5월 대책을 내놓을 때만 하더라도 국회가 입법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이미 여야가 앞다퉈 임금 체불 방지를 위한 대책이 담긴 수많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상당수 개정안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등 제재 수위가 높은 방안도 있다. 그동안 처벌 사례를 보면 체불액 대비 벌금액이 30%를 넘지 않는 경우가 전체 사건의 78%에 달했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서는 임금 체불에 대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때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국회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임금 체불 피해는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인 취약 계층에 집중됐다. 고용부에 따르면 올해 임금 체불액을 사업장별로 조사한 결과 75%는 근로자 30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이는 최근 임금 체불 피해자가 속한 사업장을 파악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조사 결과와도 일치한다. 게다가 올해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물가로 임금이 올라도 사실상 임금이 삭감된 실질임금 마이너스가 지속되면서 근로자들의 시름이 깊다.

중소기업계는 입법 필요성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의 준법 의식이 과거보다 많이 향상된 추세여서 법의 틈새를 교묘히 이용하거나 악용하는 사례는 줄어들고 있다”면서도 “다만 임금 체불 행태가 여전히 남아 있어 입법의 불가피성에 대해 공감한다”고 말했다.

다만 지방 영세 중소기업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처벌 일변도의 입법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구에 거주하는 한 기업인은 “영세 중소기업은 재무 담당 인력 등이 부족하다 보니 단순 행정 착오로 월급이 며칠 미뤄지는 사례도 있다”면서 “고의성이 없고 일시적으로 임금 체불이 된 사안에 대해서는 적절한 구제 기회를 주는 보완책도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기업인은 “일부 기업은 빠르게 성장하다 투자 유치 등에 실패하면서 임금 체불 논란을 겪었다”며 “대표의 도덕적·법적 책임과는 별개로 공공기관 입찰 금지 조항이 추가되면 회사가 자생할 기회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양종곤·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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