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올해도 법정기한(12월 2일)을 넘기게 됐다. 연구개발(R&D)·원전·지역화폐 등 쟁점 예산을 두고 여야 이견이 큰 상황에서 탄핵소추안 처리에 정국이 더욱 얼어붙으며 예산안 처리가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치권에서는 매년 관행처럼 이어진 ‘밀실 심사, 늑장 처리’가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도 예산안은 1일 국회 본회의에 원안 그대로 자동 부의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매년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쳐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야는 해당 부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는 않은 채 당분간 협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를 감안하면 여야가 예산안 처리 법정기한인 2일을 준수하는 것은 올해도 불가능하다. 2014년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된 후 여야가 법정시한을 지킨 것은 2014년과 2020년 두 번뿐이다. 지난해의 경우 12월 24일에 예산안이 통과돼 여야는 ‘최장 지각 처리’라는 불명예를 자초했다.
여야는 예산안 늦장 처리의 원인을 서로의 탓으로 돌렸다. 여당 예결위 간사인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수적 우위를 앞세운 국정 발목 잡기로 인해 올해 또 예산안 법정 시한을 넘길 듯하다”며 “예산안의 본회의 자동 부의 제도도 절대 다수 의석 민주당의 몽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고 비판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절차를 막기 위해 예산안 합의를 지연시킨 국민의힘과 정부의 책임이 크다”며 “법정 기일을 넘겨서까지 이 위원장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657조 원 규모의 예산안은 밀실 심사를 통해 협의되고 있다. 예결위 소위원회가 지난달 13일부터 정부 예산안을 심사했지만 최종 증감액 규모를 확정 짓지 못하면서 소소위원회가 가동됐다. 소소위는 예결위원장 및 여야 간사 등 한정된 특정 인원만 참여해 비공개로 진행하다 보니 ‘깜깜이 심사’ ‘쪽지 예산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쟁점 예산을 둘러싼 여야 간 견해 차가 커 합의안 도출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은 정부 원안을 토대로 증액 최소화를 주장하지만 민주당은 예비비·특수활동비·공적개발원조(ODA) 예산 등을 4조 6000억 원가량 감액해 R&D·청년 등 예산을 8조 원 이상 증액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도 원자력발전 및 재생에너지, 새만금 사업, ‘이재명표’ 지역화폐 예산 등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는 정기국회 종료일(9일)까지는 예산안을 처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거대 야당이 1일 손준성·이정섭 검사에 대한 탄핵안을 강행처리하면서 정국이 한층 더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밖에도 ‘쌍특검(대장동50억클럽특검, 김건희 여사 특검)’을 후속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 국회는 당분간 파국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국회 관계자는 “올해도 연말까지 예산안 처리가 미뤄질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며 “여야가 민생과 직결된 예산안에만 몰두해도 모자란 시간에 소모적인 정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수 야당인 정의당은 논평을 통해 “국민의힘은 시간을 끌며 예산안 본회의 자동 부의만 노리고 민주당은 윤석열표 예산만큼은 깎겠다며 감액 수정안을 내겠다고 엄포를 놓는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