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라고 하면 보통 화선지에 먹으로 획을 그어 대나무를 그린 그림을 떠올린다. 검은색 하나로 서양화의 ‘구상’에 가까운 직관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선비의 기개 등 작가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 대중이 알고 있는 한국화다. 하지만 현대 들어 가옥 구조가 변하면서 외면받기 시작한다. 아파트 같은 집에는 이를 걸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 한국화의 아름다움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키며 명맥을 이어간 두 작가의 기획전시 ‘필묵변혁(筆墨變革)-송수남·황창배’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세종미술관 1·2관에서 진행 중인 이 전시의 두 주인공은 남천 송수남(1938~2013)과 소정 황창배(1947~2001)다. 수묵화는 필묵의 회화다. 그간 수많은 작가들이 필묵에서 혁신을 꾀하려 했지만 서양의 추상화에 밀려 빛을 보진 못했다.
세종문화회관은 송수남과 황창배라는 두 작가를 통해 그간 한국 화단이 오랜 시간 시도한 ’변혁'을 조망하고자 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전통에 근간을 두고 현실을 지향하며 한국화의 확장과 새로운 입지를 구축한 두 사람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최초의 전시이기도 하다.
송수남은 한국적 정신의 표현이 수묵에서 나온다고 믿고, 1980년대 초 제자들과 함께 수묵화 운동을 이끈 장본인이다. 그는 아크릴과 수묵을 결합해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이로 인해 그의 작품은 마치 수묵화가 아닌 먹으로 표현한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함께 이름을 올린 황창배는 한 층 더 나아가 ‘한국화의 테러리스트’라고 불린 작가다. 송수남이 ‘가장 문학적인 한국화가’라고 불린 것과 대조된다. 그는 아크릴 뿐 아니라 유화물감, 연탄재, 흑연까지 수많은 재료를 활용해 한국화의 정체성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물감을 뿌리거나 나이프로 긁고, 종이를 오리며 점차 변방으로 밀리던 한국화를 아예 다른 형태로 바꿔 놓는다. 뒷전으로 밀리던 한국화를 부여잡고 다양한 실험을 함으로써 새로운 표현주의를 모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측은 “필묵의 변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오롯이 뿜어내는 시각적 울림과 함께 삶을 대하는 시선에 대한 두 작가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며 "송수남·황창배를 통해 한국화단이 꾸준히 시도했던 ‘변혁’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14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