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현재의 FIA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AIACR’가 주관하던 대회에는 ‘은색의 차체를 가진 레이스카’들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페인트를 벗겨냈다’라는 식의 포장이 더해진 메르세데스-벤츠의 레이스카, W25가 대표적인 존재다. 그리고 다른 브랜드들은 경량화, 그리고 운영의 편의성 등을 위해 ‘차체’를 도색하지 않은 상태로 레이스에 투입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우토 유니온(Auto-Union)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실제 아우토 유니온은 1930년대, 페르니난트 포르쉐와의 협업을 통해 개발한 렌바겐(Rennwagen) 역시 은색의 차체를 뽐내며 숱한 레이스에 참가, 우승을 차지했다.
1936년과 1937년, 유럽 모터스포츠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렌바겐 타입 C’는 어떤 차량일까?
P-바겐으로 시작된 렌바겐 시리즈
1930년 대 초, 페르니난트 포르쉐는 ‘자신의 자동차 브랜드’인 포르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 외에도 타 제조사들의 레이스카 개발 및 운영 등을 위탁하는 사업(HFB, Hochleistungsfahrzeugbau GmbH)을 마련했다. 실제 반더러(Wanderer) 역시 HFB 측에 문의를 하기도 했다.
아우토 유니온의 전설적인 실버 애로우, 렌바겐 역시 HFB와의 협업을 통해 개발됐다. 처음에는 P-바겐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었으나 이내 레이스카의 성격을 강조하듯 보다 직설적인 ‘렌바겐’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았다. 참고로 렌바겐은 ‘레이스카’를 의미한다.
1934년, 렌바겐 타입 A를 시작으로 1935년의 타입 B로 이어졌고 1936년과 1937년에는 ‘렌바겐’ 역사 상 가장 뛰어난 성적, 성과로 아우토 유니온의 승리를 이끌었던 타입 C가 등장하게 된다.
렌바겐은 타입 별로 형태가 사뭇 다르지만 특유의 매끄럽고, 곡선을 강조한 형태가 돋보인다. 여기에 타입 C의 경우, 3,920mm의 전장과 각각 1,690mm와 1,020mm의 전폭과 전고를 통해 마치 ‘어뢰’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기술적인 완성도가 뛰어날 뿐 아니라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시스템의 구조는 무척이나 이채로워 시선을 집중시킨다. 다만 지금의 자동차와 다른 오픈 구조, 그리고 체급 및 성능에 비해 다소 빈약해 보이는 휠과 타이어의 조합 또한 독특하다.
드라이빙에 집중한 공간
렌바겐, 즉 레이스카인 만큼 타입 C의 실내 공간은 무척이나 비좁고 ‘주행’을 위한 요소 외에는 따로 적용된 것이 없다.
실제 렌바겐의 실내 공간에는 큼직한 원형의 아날로그 클러스터가 자리하며 그 주변에는 네 개의 작은 클러스터들이 부수적인 수치들을 표기한다. 이와 함께 네 개의 스포크를 적용한 큼직한 스티어링 휠, 그리고 작게 구성된 기어 시프트 레버가 돋보인다.
레이스카이며, 당대 무게 규정에 대응하며 개발된 만큼 렌바겐의 실내 공간에는 별도의 마감이 없이 ‘리벳 용접’ 등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났고, 레이싱 시트 역시 ‘지금’의 기준으로는 무척 투박한 모습이었다.
6.0L 엔진을 앞세운 렌바겐
렌바겐은 타입 A부터 타입 D까지 다채로운 엔진을 탑재하며 우수한 성능을 내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렌바겐 타입 C는 ‘거거익선’의 정신에 입각한 V16 6.0L 엔진을 탑재해 폭발적인 성능을 냈다.
실제 타입 A와 타입 B가 4.4L, 5.0L 엔진을 탑재해 각각 295마력과 375마력을 낸 것으로도 부족한지, 타입 C에서는 무려 485마력, 그리고 이후 추가적인 개선을 통해 520마력까지 냈다. 이는 ‘당대의 기술 발전’ 속도를 입증했다.
강력한 V16 엔진에는 5단 수동 변속기, 후륜구동 레이아웃이 조합됐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폭발적인 가속 성능은 물론이고 지금의 고성능 스포츠카, 혹은 레이스카들과 비견될 340km/h의 최고 속도를 자랑했다.
렌바겐 타입 C는 이러한 ‘성능’을 바탕으로 1936년, 독일 그랑프리에서의 우수한 성과를 냈고 같은 해의 여러 레이스 대회 및 1937년에도 뛰어난 성적으로 아우토 유니온, 그리고 ‘나치 독일’의 위상을 높이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아우토 유니온과 포르쉐는 ‘공기역학’을 위한 연구, 그리고 초고속 주행이 가능한 레이스카 개발이라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렌바겐 타입 C에 새로운 바디쉘을 얹은 ‘스트림라인(Streamline) 사양을 개발했다.
스트림라인은 실제 주행에서도 380km/h를 돌파하고, 이후 400km/h를 주파하는 등 ‘공기역학’의 중요성을 입증했다. 그리고 이후 ‘레이스카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줬고, 이는 현재의 ‘프로토타입’ 레이스카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렌바겐 타입 C를 비롯한 여러 렌바겐들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파괴되거나 손상됐고, 이후 아우디, 그리고 개인 수집가들에 의해 일부 복원되어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다섯 대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우디는 지난 2007년, 어린 아이들을 위한 1:2 크기의 페달카로 ‘렌바겐 타입 C’를 출시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