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기간 동안 '보복 소비'를 타고 급성장한 세계 고급 패션 브랜드 시장이 경기 둔화의 여파로 위축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고급 브랜드들이 넘쳐나는 재고로 골머리를 앓으면서 그간 꺼렸던 할인 판매를 눈에 안 띄게 재개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컨설팅기업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세계 고급 패션 브랜드 시장의 올해 매출액은 3천620억 유로(약 514조원)로 작년보다 약 3.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명품 시장은 팬데믹 2년째인 2021년 31.8% 팽창한 데 이어 작년에도 20.3%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으나, 올해는 5%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성장에 급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우선 소비자들이 팬데믹 이후의 '한풀이식' 소비에서 벗어난 데다가 미국,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소비자들이 차츰 지갑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온라인 명품 쇼핑몰 '마이테리사'는 "2008년(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시장 상황"을 겪고 있다면서 지난 3분기 말 기준 재고가 1년 전보다 44% 급증했다고 밝혔다.
버버리의 경우 백화점에서 안 팔린 재고를 도로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경우 일반 패션기업들은 대폭 할인 판매로 재고를 소화하지만, 고급 이미지를 지켜야 하는 명품 브랜드들은 할인을 꺼리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점이 문제다.
고급 브랜드들은 최근 수년간 할인 판매를 뿌리뽑기 위해 부지런히 애써왔다. 이를 위해 할인 판매에 적극적인 독립 소매점이나 온라인 쇼핑몰에 제품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프라다의 경우 도매상에 대한 의존도를 2018년의 절반 수준으로 낮춘 상태다. 이제 프라다는 제품 대부분을 본사가 가격을 완전히 통제하는 자체 매장에서 판매하면서 자사 매장에서 할인 판매를 중단했다. 경쟁사 구찌도 마찬가지다.
명품 브랜드들은 백화점의 할인 판매도 단속하고 비공식 재판매상으로 제품이 유입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비공식 재판매상은 통상 상대적으로 명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유럽 소매업체 등지에서 명품 재고를 사서 가격이 최대 33% 이상 높은 한국이나 홍콩에 파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급 패션 브랜드들은 소매업체들이 재판매상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판매 계약에 넣는 방식으로 이런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처럼 고급 패션 산업은 최근 몇 년 동안 세일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을 차단하는 데 탁월한 성과를 냈지만, 매장들이 쌓이는 재고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면서 이런 전략을 고수하기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WSJ은 평가했다.
실제로 최근 몇 달 동안 비공식 재판매상들이 명품 브랜드들로부터 직접 재고 판매를 제안하는 연락을 받는 징후가 있다고 WSJ은 전했다.
이들 브랜드는 과거에는 재고를 헐값에 팔 바에야 아예 태워버리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패션 제품 소각을 법으로 금지함에 따라 이런 방식 또한 여의치 않게 됐다.